전국공무원노조의 파업이 기정 사실화됐다. 노조는 15일 파업 강행을 공식선언했고 정부는 대화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이고 파업참가자 전원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까지 정해 놓았다. 조합원들이 14일부터 서울로 올라오기 시작하고 정부가 이를 막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수순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총파업 찬반투표 중단과 파업돌입을 공식선언한 지난 10일 밤, 김영길 공무원노조 위원장을 만나 파업 돌입을 앞둔 심정과 이후 계획을 들어 봤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무원노조법안이 철회되는 것만이 파업을 막을 수 있다”며 “이제는 총파업에 급브레이크를 걸기에는 늦었다”고 말해 파업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지금은 단체장 상대로 싸울 상황 아니다”

-현장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해진다.
“경찰병력이 전 관공서를 점령하다시피 들이닥친 것은 군사독재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위축되지 않는다는 게 비정상이다. 어차피 조합원들은 지도부의 결단을 믿고 움직인다. (투표 뒤 현장상황을) 보고받아 보니 지부장 등 간부들이 연행될 때 현장에서 함께 싸우지 못했던 조합원들이 서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 그런 사람들의 속뜻이 무엇이겠나. ‘내가 할 일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심정인 것이다. 이들을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9~10일 전후로 해서 경찰의 이성을 잃은 탄압 때문에 지부장이 사퇴하는 등 일부 위축된 지부도 있다. 하지만 불법적인 탄압으로 조합원들의 분노가 더 고조되고 폭발한 곳도 있다. 전체적인 동력에는 손실이 없다.”

-파업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인가. 2만 규모의 상경파업과 위력적인 현장파업을 장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앙의 상경대오를 중심으로 하되 (조직력이 탄탄한) 거점지역에서는 지역별로 진행하는 현장파업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파업대오가 현장에 머물기보다는 예정됐던 인원을 최대한 중앙으로 집중하는 쪽으로 결의되고 있다. 예컨대 경남본부의 경우 상경투쟁 인원을 3천명으로 잡고 도청 잔류인원을 5천명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6일 지역본부별 결의대회 때 나타난 경찰의 행태를 보고 ‘도지사를 상대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하고 상경투쟁에 집중 결합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대규모 인원이 현장파업을 위해 지방에 있기로 했던 것을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바꿨을 뿐이다. 위력에는 차이가 없다.”

법안처리 연기 정도로는 파업 멈출 수 없어

-파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정부의 입장변화다. 입장변화가 없는 한 계속 간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기를 넘어선 것 같다. 어차피 마주보고 달리는 상황인데 정부의 입장변화가 나온다고 해도 급브레이크를 밟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럴 경우 차가 뒤집어진다. 조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입장의 변화 가능성이 있다 해도) 급제동을 걸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뭐냐. 명백하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정부의) 카드는 법안 철회다. ‘법안을 보류하거나 내년에 다시 얘기하자’ 정도로는 급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법안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오늘 노조가 투표중단과 파업강행 기자회견을 하고 난 뒤 발표된 (파업참가자 전원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행자부 차관과 노동부장관의 행태를 봐라. 그 가능성은 0.1%도 안된다.”

-그러면 법안이 철회되지도 않을 것이고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가.
“어차피 서로 마주보고 달리고 있다. 서로 피해보는 것이다.”

-법안 철회 가능성도 적고, 그렇다면 무조건 피를 흘려야한다는 건가.
“법이라는 것은 현실의 반영이다. 거대한 사회변화를 법률이 뒤따라가는 것이지 법조문에 따라 변화의 흐름이 달라질 수는 없다. 2002년 김대중 정부가 ‘공무원노조법’도 아닌 ‘공무원조합법’을 강행하려 했다. 그 법안을 철회시킨 게 연가투쟁이었다. 그 법을 받았으면 ‘노조’도 아닌 ‘조합’이 됐을 것이다. 지금도 정당한 투쟁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다. 지금 여기서 멈춘다면 정말 굴욕적인 법안을 받는 것이다. 피를 흘린 만큼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지도부는 이미 각오가 돼 있다. 우리가 흘리는 피에 의해 역사가 전진할 것이다.”

-피를 흘리면 정말 성과가 남는 것인가.

“속칭 강경지도부 제거라는 수법은 70~80년대 수법이다. 지도부와 대중을 분리시키려는 작전인데 지금도 그대로 쓰려는 것이다. 허성관 행자부 장관이 이 말을 했다더라. ‘일부 강경지도부가 노조를 이끌고 있어 문제니 지도부를 정리하면 된다’고…. 14만명의 거대조직이 지도부 몇 명 정리한다고 주저앉지는 않는다. 조합원들이 뒤를 이을 것이다.”

-교섭 등 다른 전술 없이 너무 강공이라는 지적이 노동계 내부에도 있다.
“운동을 오래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원칙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 본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대화만 하라는 것은 굴종이다. 대화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선 우리의 힘이 있어야 한다. 조합원들을 어떻게 묶어세우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물론 오랜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는 세세한 전술을 고민할 수도 있겠지만 거대한 조직이 짧은 시간에 그렇게 하긴 힘들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뒤집어지는 상태에 있다. 하지만 (양대노총의 대정부 대화 등) 소위 공중전이라는 것은 별도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지상군이니까 돌격할 수밖에 없다.”

“민중운동에 진 빚, 우리가 보답할 때”

-양대노총이 함께 준비하면서 ‘민주노총 가입의사가 확실한 것이냐’는 의문도 있다.
“(웃으며) 그런 질문은 농담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지난 8월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가입에 관한 긴급 상정안이 부결된 뒤 내년 정기대대에서 상급단체 가입 일정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선거공약에도 들어있다. 당연히 (내부적으로는) 민주노총으로 돼 있다. 한국노총 지도부도 내부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하나다. 우리의 적은 자본과 권력이다. 우리끼리 과거의 행적과 생각을 문제 삼으면서 차이를 따지면 백전백패다. 이번 싸움을 준비하면서 많이 느낀 점이다.”

-사회적 교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갔다가 이용만 당했다는 인식 때문에 생긴 논란 같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다만 굳이 말한다면 정부와 싸우는 상황에서 노동계 전체를 규합할 수 없다면 일정 부분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도 있다고 본다.
참관단체 자격으로 민주노총 중집회의에 가봤는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 민주노총 선거에서 (사회적 합의가) 최대 쟁점이었다고 알고 있다. 선거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이수호 집행부가 당선됐다. 조합원들이 그 공약을 인정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거에서 당선된 집행부가 공약을 이행하려 하면 힘을 실어주고 그 뒤에 오류가 보인다면 지적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노조의 파업과 전체 노동운동과의 관계는.
“하반기 투쟁을 준비하면서 조합원 동지들에게 ‘공무원노조는 우리 힘만으로 생겨난 조직이 아니다’라고 말해 왔다. 수많은 선배, 노동열사, 민주주의의 피땀을 자양분으로 삼아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직협법에 따라 직장협의회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자각이 일어나서 노동조합까지 결성하게 됐다. 하지만 99년 공직협이 만들어지기까지 우리는 그런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만히 엎드려 복종하는 것만이 충직한 것으로 알았다. 진작에 공직협을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투쟁 덕분이었다.
올해 민주노조 진영의 큰 싸움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처절하게 깨졌다. 올 싸움이 마감되는 시점에 우리의 투쟁이 서 있다. 우리가 지면 내년 민중운동의 싸움을 기약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대노총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엄호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준 빚에 보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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