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이 끝난 지금도 전태일 그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가 분신이라는 방법을 통해 당시 상황을 알리려고 한 건 분명 안타깝고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1970년 23살의 태일이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평화시장 한 귀퉁이에서 자신을 불살랐다. 그의 죽음은 당시 숨죽였던 ‘노동’을 일깨웠으며 34년이 흐른 지금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다.

동일방직 사건을 모태로 1970년 후반 혹독했던 한국노동운동의 현실을 담은 음반 <공장의 불빛>.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의지와 좌절, 그리고 남겨진 희망으로 구성된 '노래굿'인 이 음반이 지난달 12일, 23살의 한 청년에 의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1982년 23살의 정재일은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현재 기타, 피아노, 베이스를 비롯해 유럽의 민속악기에 이르기까지 10종의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재능을 자랑한다. 그런 그를 음악인들은 ‘신동’, ‘천재’라고 일컬으며 그의 실력에 찬사를 보낸다.

1978년 <공장의 불빛>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던 김민기씨는 2002년 12월 재일에게 다시 작업해 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재일은 처음 음반을 접하고 1년 여간 손도 대지 못했다고 했다.

“김민기 선생님을 참 좋아했어요. 선생님의 음악은 소박하고 서정적인 곡들이죠. 하지만 처음 들은 <공장의 불빛>은 무척 충격적이었어요. 불협화음으로 시작되면서 가사 역시 충격적이었죠. 70년대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어요.”

재일이 태어나기 10여 년 전 상황, 그는 음반에 담긴 시대부터 이해해야 했다고 했다. 그러다 그는 배우지도 못한 한 노동자가 자신의 죽음으로 당시 상황을 알리려고 한 사실을 접했다. 그렇게 재일이 동갑내기 태일을 만난 것이다.

재일은 전태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삶을 책이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또 김민기 선생님께 수없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가슴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2003년 12월, 1년 여간 중단됐던 <공장의 불빛>은 김민기 선생님의 ‘네 멋대로 만들어 보라’는 재권유로 다시 재일의 손에 돌아왔다.

조악한 테이프의 음질로 노동자들의 손에 손을 거쳐 우리가 알고 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10개월 뒤인 지난달 12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네 멋대로 하라고 해서 정말 제 멋대로 만들어 버렸어요. 하나의 단막극 형식의 원곡을 전 영화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곡의 중간중간에 ‘공장의 불빛’ 테마가 삽입이 되죠. 여러 개의 테마로 만들어졌지만 결코 여러 개가 아닌 서로 연결된, 마치 영화음악과도 같이 말이죠.”

자신을 설명해 달라는 말에 ‘혼란’이라는 두 마디로 정의한다.

23살의 나이는 아직 그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공장의 불빛>을 작업한 재일과 태일이 어쩌면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처음 필자의 생각은 인터뷰를 끝낸 지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흑 같은 70년대 태일에게 최선은 죽음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재일에겐 구속도 집착도 없었다. 단지 그에겐 새로운 것, 아직 그가 만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 그런 그였기에 <공장의 불빛>을 작업하는 동안 그렇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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