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사상 초유의 대접전을 벌인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존 F. 케리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더구나 공화당은 의회 상하원과 주지사 선거도 '싹쓸이'함으로써 한껏 위세를 과시하게 됐다.
 
이로써 부시 행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염원은 미국 국민의 또 한차례의 잘못된 선택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로 무장한 부시 행정부는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자신의 대내외 정책과 노선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는 더욱더 기승을 부릴 공산이 크다.
 
기실 이번 대선은 9.11 테러이후 마비증상을 보여온 미국 내부의 비판정신과 자기정화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대한 기회였다. 그러나 '안보 대통령'을 자임하면서도 오히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해온 부시의 손을 또 다시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정화능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말았다.
 
문제는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다. 재신임을 받은 부시가 대외정책을 주도해온 '네오콘'을 걸러내고 자기반성을 통한 대외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면, 향후 4년의 세계는 지난 4년보다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다.

불안한 중동·양안 정세와 한반도의 어두운 미래
 
이에 따라 향후 세계질서는 이전보다 혼돈 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손에 넣고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을 친미질서로 재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부시의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후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적극적으로 개입해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할 가능성도 낮다. 무엇보다도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 핵문제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려온 중동의 앞날이 더욱 어두워지고 이에 따라 반미 테러도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기 부시 행정부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중국과의 관계도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시기적으로 볼 때, 미-중간의 갈등 요인이었던 대만 문제,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 북핵 문제 등이 부시 행정부 2기에 더욱 첨예한 형태로 나타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의 천수이벤 총통이 2008년까지 헌법을 개정해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철회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천명하면서도 대만에 무기를 수출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고, 중국은 대만의 독립 선언시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양안 문제는 북미 갈등과 함께 향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 동안 갈등이 증폭되어온 북미관계 역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태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강경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북한의 대응은 복잡한 양태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는 6자회담의 성패,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이라크·이란을 비롯한 중동 정세,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이해관계,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진행 상황 및 군사력의 변화, 남북관계와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 등이 있다. 이들 변수는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네오콘’의 득세, 전투병 파병 요구로?

먼저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북한의 6자회담 참가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를 요구하면서 6자회담 참가를 미루거나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면,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속적으로 한반도 안팎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북한인권법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 들어갈 것이다. 아울러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도 대북관계 속도조절 및 대북지원 축소나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과 관련해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이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 언론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1기 내내 불협화음을 일으킨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교체설이 유력한 편이다. 그러나 외교안보팀의 최고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은 계속 남게 되었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루이스 리비 체니 비서실장 등은 자리 이동을 하면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기 외교안보팀은 1기 때보다 더욱 강경해질 공산이 큰 실정이다.
 
향후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이라크·이란 등 중동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자유선거와 헌법제정을 통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친미' 성향이 되도록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추가적인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임무 역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 및 테러집단 제거를 위한 목적으로 요청해올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이 파병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했지만, 재선 이후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외교정책 냉정히 재검토해야
 
한반도의 정세가 부시가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에 대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란은 2004년 초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리한 요구와 전력생산용 핵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유럽연합의 약속 위반을 문제삼으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2004년 7월에 발표된 미국 의회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란이 알-카에다와 연계를 갖고 있었다고 발표해,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2004년 7월 미국 하원은 이란의 핵무장을 억제·좌절·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모든 수단'을 미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376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란 내부의 폭동을 유발하는 등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기 부시 행정부 때에는 "이라크냐, 북한이냐"는 논란이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에는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이다. 클린턴과 부시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과거의 대미협상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북한이나, 부시의 선의를 기대하면서 외교 역량을 한미공조에 '올인'하다시피 한 남한 모두 기존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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