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현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해 “국내 유수학자들이 좌파적 정책이 기본 틀이라고 했다”며 ‘결과 평등주의’ ‘하향 평준화’ ‘정부 역할 극대화’ ‘사유재산권 인정 최소화’ ‘기업자유 최소화’ ‘친북·좌파인사 띄우기’ 등을 이유로 현 정부 여당을 좌파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10월의 마지막 날,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폄훼 발언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한나라당의 공세를 색깔론이라고 하면서 “나를 포함해 정부와 여당 안에 좌파나 주사파가 포진하고 있다면 당장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라…얼마든지 고문당해 줄 용의가 있다”고 격한 발언을 했다. 이해찬 총리는 한나라당 폄훼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 전에 이미 “우리는 결코 좌파 정부가 아니다. 자꾸 그러면,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은 한나라당의 ‘좌파 딱지 붙이기’가 어지간히 억울하기도 한 모양이다. 한국 사회과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말을 들어볼 때 더욱 그렇다. 얼마전 송호근 교수는 한 일간지 시평을 통해 현 정부가 “좌파 소리를 듣는 이유는 ‘기득권층을 적대시하는 정치적 레토릭’과 ‘체감경기를 무시하는 희망사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현 정부 여당의 정책 중 “좌파 냄새를 풍기는 정책이 있다면 종합부동산세, 출자총액제한제도, 그리고 한창 손질 중인 신문법과 방송법이 고작일 것”이라며, “현 정권의 정책초점은 합리성과 투명성 증진, 독과점 폐단 축소, 시장경제 기반 조성에 맞춰져 있”고, 이는 “정책 내용으로는 전적으로 우파적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이 보기에 송호근 교수는 유수한 학자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얼마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원장으로서 재계의 싱크탱크를 지휘하고 있다는 좌승희 원장이 성매매 특별법은 좌파 정책이고, 따라서 현 정부 여당은 좌파정부라고 한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정교한 분석일 뿐만 아니라 설득력을 갖는 평가라고 할 수 있을 있을 것이다.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좌승희 원장에게 ‘올 해의 코디미(노력) 상’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성매매를 가장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 가장 보수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며, 극우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도 성매매에 가장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좌승희 원장이 ‘성매매=좌파’라고 한 것은 국민을 한번 웃겨 보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현 정부 여당을 좌파가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은 정부 여당의 정책에 대해 정치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데 반해, 좌파라고 하는 학자는 ‘웃기는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니 정부 여당이 억울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부 여당을 좌파 정부라고 규정하는 이유로 들고 있는 평등주의, 하향 평준화, 정부 역할 극대화, 사유 재산권 인정 최소화, 기업자유 최소화, 친북·좌파 인사 띄우기 등도 사실은 현 정부 여당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교육평준화 정책, 국가주도의 성장전략, 금융특혜 등을 통한 기업에 대한 통제 등을 떠올릴 때 그렇다.
 
뿐만 아니다. 친북·좌파 인사 띄우기에 있어서도 그렇다. 수많은 공안사건 조작 등으로 친북·좌파인사들을 여느 연예인 못지 않게 언론지면에서 비중있게 다루도록 한 것 역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대표적이었다. 사유재산권 인정 최소화는 어떠한가.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수구세력과 함께 현 정부 여당을 좌파라고 규정하는 데 행동을 같이 하고 있는 재계는 최근 기업도시를 둘러싸고 100%의 토지수용권 보장과 개발이익환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토지수용권은 50%까지만 보장하고 개발이익환수는 70%선에 맞추겠다는 안을 갖고 있다. 도대체 누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정부 여당이 그렇게도 억울해하는 '좌파 딱지'를 떼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좌파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기득권층을 적대시하는 레토릭으로 정쟁을 유발할 것이 아니라, 송호근 교수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전적으로 우파적인 자신들의 주요 정책을 널리 설파하면서 국정을 주도해나가면 된다.
 
그러니까 정부 여당을 좌파라고 딱지 붙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한나라당과 수구세력, 재계 등을 상대로 누가 진짜 우파인지 붙어보자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좌파가 아니야’라는 하소연만 하지 말고 말이다.
 
이와 관련, 정부 여당에 대해 한 가지 조언을 하면 이렇다. 정부 여당이 우파임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정책들은 대부분 사회경제 분야의 정책들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책, 기업도시정책, 각종 규제완화 정책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 정책들을 주요 정치적 의제로 설정하게 되면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는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는 한나라당이 형편없는 '가짜 우파'임을 자연스럽게 입증해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정부 여당은 최근 경제난 타개를 위해 ‘한국형 뉴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선상에서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 대표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야당에는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로 비난받고, 여당 내 급진파에게는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비판받으면서도 개혁을 멈추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 낸 루스벨트의 신념과 용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정부 여당은 사실은 전쟁이라는 가장 극우적인 정책을 통해 성공신화를 창출한 뉴딜정책을 배우고, 자신의 대통령 재임시절 전쟁을 치르고 싶어했던 루스벨트를 추앙하는 것 또한 좌파 딱지를 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용이하리라. 그럼 정부 여당의 선전을 한 번 기대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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