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 10월31일 “나를 포함해 이 정부와 여당 안에 좌파나 주사파가 포진하고 있다면 당장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라. 얼마든지 고문을 당해줄 용의가 있다”고 한 모양이다. 현 정권을 향해 ‘좌파’라고 막무가내로 비난하는 한나라당의 저열한 공세에 대해 여당은 이렇게 맞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두 당의 이런 공방 속에서 ‘좌파’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불가촉 천민’이 되고 만다.

‘좌파’는 불가촉 천민?

여당에게 이 ‘불가촉 천민’의 하나가 바로 신문사 소유지분 분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아닌 듯하다. 언론·시민단체들이 마련한 신문법안을 입맛에 맞게 ‘표절’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소유지분 분산 등의 핵심조항을 뺐다.

어설픈 일부 시민단체운동가나 학자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그런 것이라는 뒷소문도 무성하지만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여당이 소유지분 분산 누락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소유지분 분산이 빠진 것에 반발하는 언론·시민단체들을 향해 언론에서는 ‘우리당에 등돌린 우군’이라고 표현한다.

여당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이런 공격은) 우리당이 진보나 보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답변한다. 이렇게 소유지분 분산은 중도우파가 거리를 둬야 할 ‘불가촉 천민’에 속하게 된다.

내가 한나라당의 ‘좌파’ 공세보다 이에 대처하는 열린우리당과 현 정부의 태도에 더욱 더 관심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적어도 4·15 총선 이후, 국정의 방향을 잡아가고 정국의 기선을 제압하는 것은 여당이다. 열린우리당은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얘기다. 물론,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한나라당 역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우리당과 노 대통령, 전략인가 오판인가

이 속에서도 한두 가지는 확실히 관철되고 있다. 기업도시특별법, 파견근로 전면 확대를 포함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강행이 그것이다. 일부 수구신문과의 대결 속에서도 막나가는 비정규·기업도시 관련법. 개인적으로 현 정국의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아마도,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한나라당에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양다리를 걸친 채 곡예를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과 현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이 수구를 고립시켜 무력화시키는 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기를 살려주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9일 이른바 수구·보수를 망라한 이른바 각계 ‘원로’ 1,500여명이 시국선언을 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9월11일치 3면에 김영삼 정권에서 교육부장관을 했고, 도올 김용옥의 누나이기도 한 김숙희씨의 인터뷰를 실었다. 조선이 잘 쓰는 왜곡이 없다는 전제 아래, 김씨의 인터뷰 내용은 이른바 ‘건전한’ 보수가 건전한 진보나 중도로 끌려오기보다 수구쪽으로 견인돼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듣는 이에 따라 김씨의 말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엘리트 의식의 산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라가 변화를 하려면 국민의 의견 수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차근차근 변해야 한다. 변화하는 속도도 너무 빠를 뿐만 아니라 방향도 의심스러워 답답하다. 국민 합의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 혼자서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된다. 이런 염려 때문에 시국 선언에 서명을 했다.

소위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수파들이 나서서 서명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진보·보수에 관심도 없다.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열흘 전 시국 선언 동참 여부를 묻는 우편을 받고, 주저 없이 서명을 했다… 위태로운 나라 걱정으로 지식인 서명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 대학교수와 언론인 등이 모여 정권을 비판하는 지식인 서명을 했다. 서명 후 경찰서에 끌려가 갖은 모욕을 당했다. 비록 억압이 두려웠지만 '나라를 위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각오로 서명을 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군사 독재시대도 아닌데 왜 이런 서명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수구’로 견인되는 정치의 동학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동의한다면 김씨와 같은) 건전한 보수가 하나의 사회세력을 이루고 있지 않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또는 전투적 자유주의’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력화하지는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영향력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건전한 보수로 평가되는 김씨와 같은 이들이 여론에 행사하는 영향력이나 상징성은 훨씬 크다.

혹자들은 최근의 정국을 보며 “17대 총선 이후 보수진영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개혁적 보수가 사실상 파산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하지만 그들이 보수이든 개혁적 보수이든 그들이 수구에 견인됐다는 게 더 중요하다. 거기에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은 적어도 50% 이상 기여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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