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FTA 협정 체결을 저지하기 위한 양대노총과 시민·민중운동 단체들의 ‘일본 원정투쟁단’이 31일 제6차 양국 협상회담이 열리는 동경으로 떠났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중요한 수단으로 각종 FTA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지만, 정작 국내 산업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과 노동의 관점에 입각한 분석은 별로 없었다. 민주노동당 서준섭 정책연구원(외교통상 담당)의 글을 통해 한일FTA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편집자주>

한일 양국은 작년 12월 제1차 한일FTA 협상을 개시하여 내년 연중 타결을 목표로 FTA협상을 벌여 왔다. 그간 한일FTA 협상은 협정의 원칙 및 협정문안에 대한 협상이 주를 이루었으며, 양국은 관세철폐, 비관세장벽의 완화, 투자, 서비스 및 경제협력을 포함한 포괄적인 FTA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번 11월 동경에서 열리는 제6차 협상에서는 양국이 상품 양허안을 교환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상품 양허안이란 관세철폐 대상이 되는 품목의 범위 및 관세 철폐 일정에 대한 양국의 계획을 말하고, 이는 협상을 통해 변경되어 확정된 후 협정문에 첨부되게 된다. 그간 양국의 원칙적 합의에 따르면 대부분의 상품이 관세철폐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며, 대상이 되는 상품은 협정 발효 10년 안에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게 된다.

관세율과 산업 경쟁력 비교
 
한국과 일본의 현행 평균관세는 한국이 8% 가량이고 일본이 3% 가량이다. 그간의 한일 FTA의 효과에 대한 연구들은 단기적(10년 이내)으로 한국에 불리하고 일본에 유리하여, 우리의 대일 수입이 급증하고 대일 무역수지는 한층 악화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즉, 한일 FTA로 인해 일본상품은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게 되어 수입이 급증하게 될 것이고, 현재 200억 달러(약 24조원)에 이르는 우리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규모는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표 1>

<양국의 주요산업의 관세율 및 관세철폐시 각 분야별 무역수지 효과>
 평균관세율관세철폐시 무역수지(년)
한국일본
섬유9.769.306천5백만 달러
화학6.862.00- 3억5천9백만 달러
기계7.900- 11억7천4백만 달러
철강금속3.880.60- 2억8천1백만 달러
전기전자8.000- 15억5천만 달러
수송기계4.950- 7천3백만 달러
(자료: LG 주간경제 2003.11)

또한, 협정의 체결로 양국의 기업들은 무제한적 경쟁 환경에 직면하게 되어, 상호 비경쟁적 기업은 퇴출되거나 기업간 인수합병 및 해외이전 등을 통하여 대대적인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이 벌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한국의 가장 큰 피해는 일본에 비해 현저히 경쟁력이 낮은 중소제조업체와 부문별로는 기계와 자동차 관련 산업 등이,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부품소재산업 및 첨단기계설비산업에서 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기계와 자동차부품산업 외에 화학과 철강은 범용표준화된 제품의 경쟁력은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기술력에 기반한 차별화된 제품에는 경쟁력이 없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제품은 백색가전(냉장고, 세탁기 등)이외에는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고 의류는 수출확대가 예상되나 섬유제품은 수입확대가 예상되어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참조: KIEP/대한상공회의소 세미나자료, 2002) 이들 중 특히 산업기계, 가전, 철강, 수송기계 등은 이미 국내시장에서 일본상품의 경쟁력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이 부문의 산업이 받는 피해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표 2>

<한·일 FTA에 따른 무역수지의 추가적 악화>
연구기관대일 무역수지 효과기 타
KIET(1999)관세 철폐: -33.6억달러
(- 4조 3백억원)
관세/비관세 장벽 동시철폐:
-71.5억달러 (- 8조 5천억원)
KIEP(2000)-60.9억 달러동태적으로 긍정적 효과 주장
IDE(2000)-38.85억 달러동태적으로 긍정적 효과 주장
(자료: LG 주간경제 2003.11)

섣부른 낙관과 위험에 대한 과소평가
 
반면 정부는 한일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장기적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낙관적 효과를 주장한다. 즉, 한일 FTA는 1) 양국 기업의 경쟁을 촉진하고, 2) 중복투자를 해소하며, 3) 양국의 통합된 경제로 인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자원의 통합적 활용을 하게 하여,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대일 무역수지 악화는 장기적으로 완화되고, 우리의 국제적 무역활동에 순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지면 관계상 정부의 주장을 일일이 반박할 수는 없지만, 정부의 한일FTA의 성급한 추진정책은 우리 산업(특히 중소기업)의 현실경쟁력에 대한 과대평가와 우리의 미래 산업경쟁력을 낙관적 평가하는 반면 일본 경제와 산업의 역동적 우위에 대한 현실을 과소평가하는 잘못된 현실인식과, 개방하고 구조조정하면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미신에 바탕을 둔 도박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일 FTA는 우리산업의 해체와 공동화를 가속시킬 뿐이며, 한일간 산업분업이 상하구조 고착화를 완결하여 우리산업의 일본산업으로 종속화시킬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가해질 충격과 위험

한일FTA는 또한 노동시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한일 FTA에 따른 대대적인 산업의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요 통상협정 체결에 따른 실업의 발생은 일시적인 경기변동에 따른 실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실업은 산업의 포괄적인 구조조정에 그 원인이 있어, 실업의 규모에 있어 대량일 뿐만 아니라, 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장기간이 필요하게 된다. 즉, 산업 퇴출에 대처해 유휴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신산업의 성장기간이 필요로 하며, 실업자의 새로운 직종으로의 이동은 새로운 기술의 습득을 위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업의 해소는 결코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대량의 유휴노동력의 발생과 장기간 실업 지속은 실업 자체가 야기하는 노동자의 삶의 불안정성에 국한되는 문제뿐만 아니라 산업예비군의 증가에 따른 노동조건의 악화 역시 필연적으로 야기할 것이다.
 
한편 한일 FTA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유연화 정책과 맞물려 노동시장의 가중적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신고전파의 경제철학에 기반을 두고 통상협정과 무관하게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여기에 한일 FTA의 체결은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즉, 노동시장의 경직성의 유지는 한일 FTA에 따른 산업의 효과적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것이므로 유연한 고용형태를 요구하게 된다.
 
결국 한일 FTA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한일 FTA 자체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한일 FTA에 의해 발생하는 유휴 노동력에 의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노동자와 국민, 국회까지 배제 '밀실협상'

한편 정부의 한일FTA 추진 과정의 비민주성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는 국민경제와 국민의 삶의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한일 FTA에 관한 일반 국민 및 그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와 한일 FTA에 관한 사전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협상을 강행하고 있다. 한일 FTA에 관한 이해당사자의 의사수렴은 공청회 등의 개최를 통한 형식적 과정에 그치는 것이 전부이며, 심지어 국회 역시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한일 FTA에 관한 정보는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의 전략노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국회와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결국 국회는 협정의 사후승인 기관 그리고 국민은 고통감내의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절차적 과정을 기피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정보가 차단된 상황 속에서 민중진영은 한일 FTA에 대해 효과적 대응을 하지 못하여 왔다. 이는 한칠레 FTA가 농민들이 대대적인 투쟁 동력을 이끌어 내며 조기에 사회적 의제가 된 것과 대비된다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5차 협상시 민중진영의 반대집회, 동경 원정 투쟁 및 11월에 있을 예정인 노동계의 총파업에서 한일 FTA가 주요 이슈로 설정돼 있어 한일 FTA 반대 투쟁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일FTA를 사회적 의제화 시키는 것이 민중진영의 가장 큰 과제로 보인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한일 FTA는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 큰 악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무리한 정책이다. 이는 또한 지면관계상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중국 고립정책에 휘말려 장래 우리의 국제정치적 입지를 경도시킬 위험 역시 가지고 있다. 민중진영은 이렇게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한일 FTA협상을 중단할 것으로 요구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 등 민주적 절차를 우선 밟을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일FTA로 인해 발생할 구조조정에 따른 산업 및 노동자에 대한 대책과 우리 경제의 대일본 종속화 및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정부가 우선 제시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농민, 영화인에 이어 노동자와 중소기업으로

한칠레FTA 반대투쟁이 농민의 투쟁으로 고립되고 한미BIT 반대투쟁이 영화인의 투쟁으로 고립된 전례를 볼 때 한일 FTA 반대투쟁은 노동자의 투쟁으로 고립될 우려를 낮고 있다. 통상협정의 체결은 필연적으로 피해자와 수혜자를 낳는다. 한칠레 FTA의 피해자는 농민이고 그 수혜자는 대칠레 무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대기업이다. 반면 한일 FTA의 피해자는 주로 중소기업과 노동자가 될 것이며, 그 수혜자는 대일 경쟁력을 이미 확보한 대기업이나 일본으로부터 부품 등을 수입하는 기업 등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작년에 발표한 ‘FTA추진로드맵’에 따라 일본, 아세안, 중국, 미국 등과 순차적 및 동시다발적으로 FTA가 추진된다면 그 피해당사자는 전국민과 전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다.
 
앞으로 극소수 경쟁력 있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과 산업이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점차 편입되어 갈 것이다. 오늘의 방관자는 내일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연대투쟁의 중요성이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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