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의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안 투쟁에 나서야 하는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주최로 26일 오후 7시 국민건강보험공단 강당에서 열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45) 초청 특강<사진>에서 김 지도위원은 ‘비정규 개악안’에 맞서 싸울 것을 강조했다.
 

 
김 지도위원의 털털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작년 이맘때였다. 고 김주익 열사 추모사를 통해 전국 노동자들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을 맺히게 했던 김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입사해 해고되기까지 박창수, 김주익 열사와 함께 했던 그였기에 나올 수 있는 가슴절절한 눈물의 추도사였다.
 
지난 4·15 총선 때는 전국을 돌며 ‘계급투표’를 독려하러 다녔고, 선거직후 민주노동당에 정식 입당하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은 요즘도 전국을 돌며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짧은 단발머리에 등산화, 잠바 차림의 김 지도위원은 하루 18시간을 이동하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고 전국의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강연하죠.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요. 아이쿠, 이거 본업은 제껴 두고….”
 
최근 전국을 돌며 ‘비정규 개악안 저지’ 투쟁을 호소하고 있는 김 지도위원은 이날 특강에서도 ‘계급, 계급의식, 비정규직, 연대, 운동의 진정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 지도위원은 특강에서 87년도를 회고하며 활동가들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하루저녁에 수십 개의 노조를 만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있어요. 그 때 산별을 만들었으면 좀 좋아. 그런데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일본 서적을 주로 보다 보니까, 일본의 기업별 노조를 답습한거요. 그래서 더욱더 활동가의 앎과 실천이 중요한 거에요.”
 
김 지도위원은 강연 내내 “‘계급성’이야 말로 시대를 가르는 척도”라며 변하지 않는 노동운동의 현실과, 계급의식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허위의식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수만 명이 넘는 사업장인 포철노조의 조합원이 현재 18명입니다. 20여년 가까이 숫자가 변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경우죠. 18세 어린나이의 여공 눈에 미싱바늘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치료는커녕 잔업까지 시켜 양쪽 시신경이 파손되는 나라. 비정규직인 경우, 보상한 푼 없는 나라, 계급적 관점이 없으면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나라….”
 
김 지도위원은 “우리 사회가 10대 90의 세상”이라며 “90이 100이 되는 세상을 위해 90이 단결하면 되는데 일부 노동자들은 박 터지게 10의 길로 간다”고 비판했다.
 
“장담 하건데 90이 10이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능할 것 같다는 환상을 우리 사회는 계속 심어주죠. 그러나 잔업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으로 가지는 못하고, ‘과로사’로 갈 뿐입니다.”
 
“보수언론은 현대차 고졸 노동자 임금 5천만~6천만원이라고 질타하고, 스포츠 신문에는 노동자의 삶과 전혀 무관한 이효리의 알몸, 송혜교-이병헌의 이별을 담죠. 심지어 송윤아가 이사갔다는 시시콜콜한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노조 사무실에 스포츠신문 없는 데가 없어요. 노조 간부들에게 비정규 교육 등 공부하자면 시간이 없디야. 그러면서 스포츠신문의 퍼즐, 낱말까지 다 맞추고 있어요.”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들이 ‘이율배반’을 깨지 않으면 자본의 종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90이 10이 될 수 있다는 TV 광고가 넘쳐나고, 드라마를 보면 20, 30대가 사장, 실장 그래요. 노동자들 집값 올라가면 표정관리 하느라 바쁘지요. 열심히 단결해서 10대 90의 사회 바꾸자는 거요? 웃기는 소리요, 그건 집회용 구호죠.”
 
그의 신랄한 비판은 계속됐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자살한 조합원이 8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파업에 대해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조차 ‘무리한 파업으로 노무현 정권이 약속했던 것을 하나도 안지켰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합니다.”
 
“현대차 일부 대의원들은 애비는 정규직이고, 아들은 비정규직이니까 ‘아들에게 정규직 자리를 물려주라’는 요구를 노조단협안에 넣으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니까요.”
 
김 지도위원은 20여년 운동하면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얘기가 “누가 알아주냐” “너만 피해보지”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부모, 형제도 모자라 이제는 조카한테까지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 참 드럽더라고요.” “너만 개피 본다”는 잘못된 인식이 너무나 자연스레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은연중 ‘운동의 진정성’을 상실해 가는 현실을 비판했다.
 
“자본가들은 자자손손 대를 잇습니다.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수천억원씩 벌어들이는 나라. 경실련, 참여연대는 문제제기를 하지만 노동자들은 문제제기도 안하고 있어요. 대표선수가 없어요. 이런 웃기는 일도 있었어요. LG비자금 문제 터졌을 때 노동자들이 폭로는 못할망정 ‘기업 이미지 해친다’는 발언을 합니다. 이게 뭐예요.”
 
“정규직만 마음먹으면 비정규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노조 가입 등 비정규직에 문호를 개방하는 결심을 왜 못해요.”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허위의식에 대해 김 위원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사업장에 갈 때마다 비정규직 얼마나 있냐고 물어요. 없다고 해서 칭찬했더니, 알고 보니 식당 용역 아주머니들이 있어요. 식당, 청소, 경비 등 비정규직은 노동자로 인정조차 않더라니까요. 잘나가는 노조의 한 간부가 억대의 차가 있어요. 1억 연봉(아내 포함)을 자랑하더라구요. 기분이 떨떠름했죠. 그 아줌마들은 11년간 9시간씩 일해서 63만원 버는데 노조에 가보면 9년 동안 8시간 일해서 연봉 6천만원 받는다고 해요. 연봉이 10배 넘게 차이나는데 그게 자랑스럽습니까.”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부족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지적은 또 있었다.
 
“작년 전라도의 한 대학병원 청소용역 파업에 갔어요. 아줌마들이 지하2층 습기찬 공간에서 38만원 임금에 분개해 파업을 하는데 정규직노조는 ‘우리가 왜 파업을 합니까’ 그래요. 병원 로비를 떠나 지하에서 파업을 벌이는 이유를 묻자, 정규직노조 지부장이 ‘시끄럽다고 내려가서 하라’고 그러더래요.”
 
이야기는 계속됐다.
 
“근데 그곳이 어용노조가 아니에요. 상집간부라는 사람이 ‘아줌마들 40만원에서 갑자기 50만원 주면 경영 어떻게 합니까’ 그래요. 지가 원장이야? 지는 200만원 받으면서.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임금이 적어야 한다는 사고를 하고 있어요. 더욱 가관인 것은 ‘아줌마들은 식당 반찬 남으면 집에 다 싸가지고 가기도 해요’ 이런 말하는 놈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그 간부는 시민들에게 ‘비정규직 철폐’ 하자고 그래요.”
 
김 지도위원의 연설의 힘은 풍부한 현장경험에서 우러나는 운동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통렬한 성찰에 있었다.
 
“진짜로 운동이 내려가야 된다고 봐요. 너무 올라갔어요. 올해 5월의 투쟁, 처절하게 끝난 사례 많았죠. 올해 불가사의한 것은 서울지하철 왜 이리 됐을까 예요. 노조간부들도 이유를 모른데요.”
 
김 지도위원의 진단은 이랬다.
 
“17, 18년 민주노조 투쟁하면서 노동운동이 정규직들의 임금인상만 한 거에요, 이주, 여성, 비정규 노동자 다 내버려두고 그냥 간 거에요. 이제 정규직 노동운동은 ‘양치기 소년’이 됐어요. 시민의 안전 얘기하죠. 그러면서 임금 올리고 성과급 등 다 얻어가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도의는 있어야 되요.”
 
비정규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지적이 이어졌다.
 

 
“비정규직을 같은 노동자계급으로 인식해야 되요. 자본가들은 근로자파견법 몇 년 해보니, 불법파견이 문제되고, 이제 합법적으로 파견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비정규문제에 사활을 걸지 않으면 (노동운동에) 미래가 없다고 믿습니다. 정부의 비정규법안 새삼스레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냥 해보는 얘기가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어요.”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에 직면하면서 제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설마 죽기야 하겠냐’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이었어요. 진심을 가지고 진정성을 가졌느냐죠. 20년 운동이 결코 자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이 노조라는 생각을 합니다. 장애, 비정규,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등을 노동운동 내에서 차별한다면 자본의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겠나요.”
 
“태어나서 버스를 처음 타본다는 32살 장애인의 소원이 엄마보다 먼저 죽는 것이었어요. 비정규직 800만, 이런 나라를 끝장내는 일,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돼, ‘노동해방’ 세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혼신의 힘을 다한 강연에도 김 지도위원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저녁 10시경, 강연이 끝나고 김 지도위원은 다음날 울산 강연을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