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관습헌법이라는 낯설고도 생경한 근거에 바탕해 위헌 결정을 내려 또다른 시비거리를 제공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도이전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차분하게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 정책이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문제점들 때문이다. 현실성 있는 이전비용 확보 방안의 미비에서부터 국민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던 것, 국가 주요정책을 특별법을 통해 수행하고자 했던 것,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의 불일치, 일방적 낙관주의에 의존한 정책효과에 대한 허무맹랑한 기대, 통일국가 시대를 대비하는 관점의 부재, 환경영향평가 등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채 이전지를 덜컥 선정해버리는 무모함. 도대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 한 연구원에 따르면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에 질의서를 보냈더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사항이 많다며 한 달이 넘어서 답변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당연히 검토되었어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했는데, 그에 대한 답변도 마련되지 않은 정책을 정권의 진퇴를 걸고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냐”면서 그 연구원은 기가 막혀 했다. 만약 고의적으로 늦게 보낸 것이었다고 해도 큰 문제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이라면 먼저 나서서 설득을 하고 다니는 것이 상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습헌법 논란’으로 소모전 벌일 조짐
 
사실 수도이전 문제를 갖고 ‘정치적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가 중심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집권여당은 물론, 거대 야당 역시 이는 관심 밖이었다. 아무런 정책논리적 근거도 없이 그저 찬성이냐 반대냐, 강행이냐 포기냐만을 갖고 힘겨루기를 했을 뿐이었다. 물론 지나간 이야기 아니냐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헌재가 위헌결정 근거로 제시한 ‘관습헌법론’을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라는 식으로 수도이전 문제에 대한 논의가 또다른 형태의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헌재 결정 이후 임종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헌재 결정내용을 좀더 정확히 파악하고 법적 효력의 범위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후 대응하겠다”라면서 헌재 결정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반면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헌재 결정으로 정부의 수도이전 추진은 무효화”되었으니 “정부여당은 위헌적 시도를 중단하라”면서 목청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양당 모두로부터 수도이전 정책추진이 그나마 갖고 있었던 건강성, 즉 지역균형발전과 분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 거래’ 모색하기 위한 탐색전

정부와 집권여당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대안책을 마련하고 있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수도이전 정책을 정권의 진퇴를 걸고 추진하겠다고 했던 당사자로서 마치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안책을 제시하는 것이 좀 민망했었으리라.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충격’ 속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민망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만들어놓은 대안책이 아예 없었던 것 아니었나 싶다. 청와대라면 사정이 좀 달라야 하겠으나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관습헌법 문제에 대한 우려나 분석, 판단도 종합적인 검토대상에 들어갈 것이고 앞으로 좀더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일단은 관습헌법을 문제 삼아 시간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히 긴급관계장관회의나 국무회의 소집계획도 없다고 하는 것을 봤을 때도 그렇다. 

한나라당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헌결정에 따라 대안책을 제시하며 먼저 선수를 칠 수 있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위헌결정에 대한 환영의사만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 나온 박근혜 대표도 영수회담 및 정부·여당의 수정안 제안에 대한 수용 가능성에 대해 “응할 수 있다” “의논할 수 있다” 등의 답변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그쳤다. 정부·집권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일단은 신중하게 탐색전을 펼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정치 공방을 하는 게 낫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어쩌면 차라리 정치적 공방이나 계속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문제란 다름 아닌 수도이전이라는 국가 주요정책이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접근되면서 이를 둘러싸고 일종의 ‘정치적 거래’가 모색되는 것이다.

많은 논자들이 위헌결정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몰린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는 위헌결정이 아니었다면 수도이전이 노무현 정부의 의도대로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도이전 정책 자체의 타당성이나 이에 바탕한 실현가능성을 비롯, 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지지기반의 공고함과 관료장악력, 정책결정 및 수행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국가능력 변수를 간과한 가정이다. 수도이전은 위헌결정 이전에 이미 유권자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이었다. 이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조작해낸 사실이 아닌 그 자체로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국민투표도 승산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다고 할 때, 혹자의 분석처럼 헌재의 위헌결정은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처해질 뻔했던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부담을 털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스스로가 한나라당의 대안이라고 말한 ‘과천형 청사 충청권 중앙부처 이전’이나 ‘소규모 행정수도 건설’을 대안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 역시 이를 못받을 이유가 없다. 충청권 표를 나눠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수도 이전은 결국 득표 전략을 위한 소도구에 머물고 마는 것이 된다.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정책연구단위를 국회기구로 구성하라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여느 때와 같이 노무현 정부는 정면승부를 걸고 나올지도 모른다. 국민투표 실시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국민투표에서 진다고 해도 노무현 정부는 그닥 손해볼 것이 많지 않다. “헌재가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했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하면 되는 것이고, 진다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충청권 표를 볼모로 해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면 찬성이냐 반대냐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에, 충청권 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 현재와 같은 국민투표 방식에서는 또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수안을 갖고 선택을 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런지 아닌지는 남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때 유의할 것은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면 관습헌법이라는 논거 때문에 수도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투표는 자연스럽게 개헌투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도이전 논란이 다른 조항들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때이른 개헌정국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래 저래 그야말로 복잡한 정국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수도권 이전 문제는 그야말로 중립적이고도 자율적인 정책연구단위를 국회 내기구로 구성하고, 그 기구를 통하여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재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필수적인 것은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대내외적 환경을 보다 거시적이고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며, 특정 지역과 계층 간의 이해갈등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불가피한 이해갈등이 있다고 할 때는 다른 차원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설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수도 이전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정치공학적 의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여당과 야당, 그리고 언론 등 모두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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