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의 파업이 타결되었지만 타결내용을 보면 노사 양쪽이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합의안을 보면 굳이 파업까지 가야 할 이유가 무었이었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결국 노사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힘겨루기에 애꿎은 국민만 볼모가 된 셈이며, 노사 양쪽의 협상력의 부재로 조금만 대화해도 해결할 수 있는 사안으로도 앞으로 얼마든지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할 선례를 남겨 두었다.

일단 임금협약의 경우 99년 총액대비(기존성과급 포함) 8%인상에 노사는 합의했다. 노조의 원안인 14.9% 인상안에 대해 파업 하루 전 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의 7% 직권중재안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노조도 처음부터 '임금협상 결렬'은 명분일 뿐이라고 했지만 방송공사 직원의 연봉은 이미 평균 4000만원선인 점에 비추어볼 때 8%든, 14.9%든 파업의 계기나 철회의 쟁점으로 보기에는 대외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사의 '사내 개혁을 위한 합의서'도 당장 무엇을 한다는 구체적인 안보다는 앞으로 합리적으로 협의해가자는 내용 일색이다. 특히 노조가 사내민주화의 걸림돌로 지적해온 '편중인사'문제와 관련해서는 "공사는 인사시 균형적 인사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공자말씀'만 담겨 있을 뿐, 편중 인사에 대한 시인이나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건전한 노사관계 복원을 위해 노사 상호간에 의사표현과 의견개진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고 사실에 근거없는 기사는 즉각 정정보도한다'는 미묘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그동안 노조에서 박권상 사장을 집요하게 공격해온 데 대해 회사쪽이 '사과'를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노조는 노보에 게재된 기사 가운데 △ 한광옥씨의 인사개입설 △박 사장의 5공 회귀 등에 대해 정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최성안 노보편집국장 등 노보 관련자는 무엇을 고쳐야 한다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회사가 7일 서둘러 실시한 본부장급 인사에 특정고가 배제되었다고 과연 개혁적이었느냐에 대해서도 이견이 적지 않다.

한 방송공사 간부는 "흘러간 물들을 도로 앉히려고 노조가 이런 파업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결국 노조의 이번 파업은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온 '박권상 사장 혼내기'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고, 확실한 제도적 장치나 시스템의 개혁등을 끌어낼 의지도 없으면서 파업을 벌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한 중앙위원도 "회사는 ㅈ고 출신이 들어가지 않은 본부장 인사로, 노조는 박사장이 질색해온 '사장 흠집내기' 기사를 정정하는 식으로 거래를 한 셈인데, 무노동 무임금을 감수하면서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들을 어떻게 수습할 지 모르겠다"고 밝혀 9일 새벽 5시 파업이 중단된 뒤에도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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