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이라는 이름의 록밴드가 있다.

남한 사회의 ‘운동’이 일대 격변기를 맞고 있던 1993년,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난 노래운동의 전사들. 그들은 스스로를 ‘민중 록밴드’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했다. 열사가 전사에게, 청계천 8가, 외눈박이 물고기 등 그들이 부른 노래는 ‘민중록’이라는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투쟁 현장과 거리에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수많은 정치조직들이 생겨나고 사라져갔듯 노래운동 진영의 ‘전사들’ 또한 그렇게 명멸해갔다. 한때 그 노래운동의 최선두에 있던 이들은 아련한 후일담의 기억조차 남기지 못했다.


천지인도 그런 취급을 받아야했다. 사람들은 천지인이 아직도 활동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록밴드가 이 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라며 차가운 미소만을 보내고 돌아서거나 눈꼽만큼의 애정도 없는 훈계를 일삼곤 했다. “천 선생님 계신가요?”로 시작되는 문의전화나 “가수 ‘천지인씨’를 소개합니다~” 같은 공연 사회자의 어이없는 소갯말은 차라리 해프닝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진영에 ‘발 좀 담갔다는’ 이들의 재단, 혹은 무관심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천지인은 “팀이 해체되거나 사라졌던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 부르며 함께 싸웠다”고 항변한다. 우리가 천지인의 존재를 잊어가는 동안 그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장기농성중인 명동성당에서, 혹은 노동조합의 파업현장에서 묵묵히 자신들만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지난 7월 마침내 새 음반을 발매했다.

‘3.5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앨범은 지난 몇 년 간 민중가요판의 뮤지션들 중엔 거의 유일하게 새 앨범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미 대다수 민중문화권의 활동가들이 시장에서의 ‘승부’를 사실상 포기해버린 지금, 그들의 도전은 빛나는 일이다. 그래서 천지인의 어제와 오늘은 고스란히 우리 노래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다.

그런 천지인이 최근 ‘레이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션으로서의 고민과 회한, 그리고 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도 솔직하게 토로했다.

천지인이 네팔 노동자대회 초대 받은 사연

“12월 18일, 네팔 노총이 주최하는 노동자대회에 초대를 받았어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천지인 보컬 엄광현씨는 상당히 상기된 얼굴이었다. 기자와 인터뷰 하기 직전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명동성당에서 열린 회의에 참여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이날 네팔에 오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지난 4월, 네팔로 강제추방됐던 이주노동자 샤말 타파가 우리를 초청한 것 같다”며 내심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천지인이 네팔노총의 초청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벌써 5년전부터 천지인은 여러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행사에 함께 해왔다. 때로 이주노동자들이 꾸린 밴드와 함께 공연도 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각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서로 “형, 아우”라 부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울 정도다. 천지인이 네팔에 가게 되면 비행기삯을 비롯한 경비 역시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을 계획이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인터내셔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도와주지 않아요. 네팔노총의 활동가들은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자신들이 자재를 사고 삽질 해서 직접 활동공간을 만든답니다.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주노동자나 열악한 이들의 싸움에도 함께 해달라는 겁니다. 그 친구들 보면 참 눈물이 나요. 그들이 왜 한국에 왔습니까. 돈 벌자고 온 사람들 아니예요. 왜 그 친구들이 그렇게 얼굴 망가져가며 겨울 내내 1년이 되도록 농성하고 살아야 합니까."

하지만 천지인도 자신들의 기대만큼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의 싸움에 결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밴드가 지닌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 역시 “박준 형이나 영석이 형처럼 기타 하나 둘러메고 투쟁현장을 휩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때때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한강철교에서 고공농성을 벌일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연습실에서 멤버들과 함께 라면 끓여먹다가 티브이에서 그걸 보고 얼마나 울컥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래서 그때 ‘추락’이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천지인은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현재를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땅에서 노래운동을 한다는 것은 곧 고공농성에 나선 노동자들의 심정과도 같다”고 말한다. 지난 10여년 꿋꿋이 노래운동의 ‘제자리’를 지켜왔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운동의 ‘액세서리’로 취급당해야 하는 현실. 하지만 그들에겐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장소'조차 없다.

“결국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화에 대한 투자라는 게 없다는 거죠. 작년에 민주노총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길 들은 게 행사에 참여하는 가수들을 일괄 ‘정액제’로 처리하겠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개인은 10만 원, 팀으로 오면 15만 원씩 주겠다는 거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나더군요. 아니 대학 노래패가 어디 가서 가뿐하게 한탕 뛰어도 그 이상은 받아요. 그 사람들 하는 말은 노조비가 모자라서 책정을 못 하겠다고 하는 건데, 그럼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노조비를 올려야죠. 아니면 뒷풀이를 안 하던가. 그러니까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후배들은 노래운동 못하겠다고 떠나고, 우리는 ‘돈 밝힌다’고 욕 먹는 거죠.”
 
꽃다지 부를 돈이면 이은미 부르겠다?

‘일당 15만원짜리’ 록밴드의 서러움은 단지 돈의 ‘액수’ 따위 때문에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전에 논쟁이 한번 크게 붙었는데 어느 대기업 노조에서 꽃다지를 초청했는데 금액을 1백만 원을 불렀대요. 그런데 한 노동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 그 돈을 줄 거면 이은미를 부르지, 왜 꽃다지를 부르냐’고 했다는 거예요. 참 재미있는 게 말로는 투쟁을 말하면서도 알고보면 계속 짝사랑만 하고 있는 거예요. 이은미니 윤도현이니 약간의 진보성향만 보이면 그냥 짝사랑만 하는 거죠. 돈 있으면 그 사람들 부르고, 돈 없으면 우리들 부르고…."

천지인은 “전에 우리가 학생회 활동할 때만 해도 돈이 있으면 일부러 진보진영 밴드들을 불렀다”며 “말하자면 그게 일종의 후원체계였고 어떤 연대의 도리였다”고 이야기한다. 미약하나마 그런 행위들이 진보진영 문화운동의 ‘대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봄에 춘투 시작할 때쯤에 노동문화 단체들이 ‘파업지원단’이란 걸 만들어요. 원래 취지는 자체적으로 문화행사를 기획할 수 없는 지방의 소규모 노조들을 연맹 차원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이죠. 그래서 좀 적은 돈이라도 문화단체들이 함께 결합해 활동하곤 했지요. 그런데 요즘엔 파업지원단이 가수를 값싸게 부를 수 있는 어떤 도구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파업지원단에 소속돼 있는 팀을 다른 노조에서 좀더 많은 페이를 주고 직접 부르면, 파업지원단 관계자가 그 노조에게 그러는 거죠. 아니 우리를 통해서 부르면 훨씬 싸게 부를 수 있는데 왜 그랬냐는 식이예요. 거칠게 이야기하면 싸게 살 수 있는 물건을 왜 비싸게 샀냐는 거죠.”

베이시스트 허훈씨는 “요즘엔 노조에서 아예 기획사를 사서 패키지로 가수를 부르는 일도 많다”고 설명한다. 그런 경우 ‘천지인씨를 소개합니다~’와 같은 황당한 일이 생겨난다. 록그룹 '메이데이' 출신인 허씨는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실명을 거론하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문화판 관계자 이야기예요. 10년 전에 ‘자 우리 손을 잡자’라는 큰 공연에서 머리 풀고 노래를 했더니 그 분이 ‘야, 그게 뭐냐 머리 좀 잘라라’ 그러더라고요. 신성한 민중가요판에 웬 이단아들이냐 이런 거였죠. 그런데 참 웃기는 게 신성함이란 건 결국 우리가 만든 우상이잖아요. 문화란 오히려 그런 우상을 극복해나가는 과정 아닌가요. 그런데 유독 우리 민중운동판만은 처음 그 ‘올곧은’(?) 마음 그대로만 가자네요. 지긋지긋한 운동권 근성입니다. 어떤 친구가 인터넷 게시판 어딘가에 천지인이 순수성을 잃어버렸다고 써놨던데, 참 좆까는 소리죠. 그래 너는 순수 뜯어먹다 죽어라 이거예요.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부림칠테니까요.”

기자는 그런 멸시를 굳이 견디면서까지 그들이 이 판에서 노래를 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참 뜸을 들이더니 엄광현씨가 입을 열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상당수도 처음에 음악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한 건 기본적으로 노래 ‘운동'을 하겠다는 목적 때문이었어요. 물론, 거창하게 ’복무한다‘는 표현까지 쓸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서 아무리 정나미는 떨어져도 이 판을 떠나진 않을 겁니다. 언젠가 대박을 터뜨리며 성공한다해도 이 곳을 발판으로 그렇게 되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천지인은 지금 또 하나의 기로에 서 있다. 그들은 지난 7월 3.5집을 발매한 후 12월까지 활동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4집’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3.5집 발매 이후에 각종 언론으로부터의 스포트라이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재정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결국 고질적인 음반시장의 불황과 ‘생존시스템’이 망가진 노래운동판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매니저 안병천씨는 “개인적 생각이지만, 요즘 들어 다음기획과 같은 전문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활동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춘 밴드가 시장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빛을 못 보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인과 인터뷰를 가진 날 밤엔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꽃다지 전 대표 이은진씨를 비롯한, 노동문화단체의 관계자들과 함께 어울린 술자리였다. 이은진씨는 천지인을 일컬어 “제도권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만한 실력을 갖춘 몇 안되는 밴드”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리고 이날,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하미드씨(방글라데시) 등 이주노동자 몇몇이 이 술자리에 끼었다.

그들은 이 술자리에서 한국 노동운동과 활동가들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고, 천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게다가 천지인의 한 멤버는 기자에게 “천지인 기사는 안 써줘도 좋으니까,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뤄달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술자리를 마칠 무렵, 한 이주노동자는 기자에게 “천지인처럼 훌륭한 밴드의 기사는 꼭 잘 써줘야 한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최장수 민중록밴드’ 천지인의 ‘팬’들은 이처럼 ‘국제연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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