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왜 금리를 올리는 것인가. 자기들 주장대로 미국 경제가 '제 발로 서서 굴러갈 만큼(self-sustaining)' 잘 나가서인가. 아니면 금리를 올리는 본심은 다른 데 있는 ‘성동격서’인가.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지난 6월30일 단기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8월10일 0.25%포인트, 9월21일 0.25%포인트를 올렸다. 세 차례에 걸친 인상 행진으로 현재 연방기금금리는 2년만의 최고치인 1.75%로 높아졌다. 연준이 지금까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런 인상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게 분명하다.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오는 11월10일, 12월14일 두 차례 더 열릴 예정인데, 대부분의 월스트리트 경제학자들과 금융 분석가들은 11월2일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 열리는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상 논거는 ‘성장에 중립적인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립적’이란 통화정책이 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논리는 2003년 7월 이후 1%에서 유지하고 있는 금리 수준을 높여도 될 만큼, 미국 경제의 성장이 제 궤도에 올라섰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미국 경제의 불황이 시작되자, 연준은 2000년 12월 6.4%이던 금리를 13차례에 걸쳐 1%까지 끌어내린 바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제 궤도에 올라섰는지에 대해서는 숱한 의문이 있다. 실제 연준이 9월 금리 인하를 앞두고서는 온갖 어두운 경제지표가 쏟아졌다. 소비자신뢰지수 급감, 비농업 부문의 일자리 증가속도 둔화, 신규주택 판매 감소 등이 그것이다. 9월 이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소프트 패치’(성장 속의 일시적 침체국면)라는 말로 둘러대고 있다. 성장세가 확고한 만큼 일시적 침체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연준의 미국경제 전망 자체가 급속히 전환됐다는 데 있다. 연준은 지난 6월4일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 안정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봤다. 노동시장 상태는 물가상승 압력을 낳기에는 역부족이고, 설사 압력이 있다 해도 기업들의 높은 이윤마진율에 의해 흡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다가 6월30일 만장일치로 ‘물가 상승 압력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할 만큼 성장이 제 궤도에 올랐다“고 갑자기 돌아섰다.

연준의 이런 표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금리 인상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일부 학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금리 인상 행진은 ‘성장→실업 감소→임금 상승→물가 상승 압력’이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분석한다. 주택시장 거품 등을 제거하는 데 진짜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거품 폭발을 낳는 급속한 금리 인상보다는 꾸준한 인상을 통해 연착륙을 노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맞는다고 해도 연준의 금리 인상이 자산 거품의 연착륙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연준 스스로가 주택시장에 거품이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6월 영국 중앙은행 총재 머빈 킹이 “주택가격의 하락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 분명하다”며 영국 주택시장의 거품을 내비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그는 “영국 주택가격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보는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까지 썼다.

달성하고픈 목표를 숨기면서 펼치는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미국경제를 가까스로 뒷받침해온 군사적 지출 등 재정정책이 급속히 고갈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금리 인상은 외국자본 유입을 부추기고, 이는 오히려 주식·채권시장 거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정말로 자산 부문 거품을 겨냥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외국자본 유입과 이에 따른 ‘강한 달러’ 문제를 풀기 위해 연준과 부시 행정부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동아시아 각국 통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중국이 처음 참가한 가운데 열린 선진7개국 회담도 바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의도가 제때 관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국이 달러에 고정된 위안화 가치 변동폭의 점진적 확대라는 확고한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의도된 ‘이중의 사기’에 기초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경제가 성장의 제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이뤄진다는 믿음에 부응하는 것이 하나요, 주택시장 거품을 부인하면서 이뤄진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런 사기는 언젠가 반드시 처벌받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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