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한국이 1년 만에 무려 11단계 추락한 29위로 평가되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이를 두고 ‘충격’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이 조사의 신빙성을 떠나, 아마도 이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임과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명문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애국심 어린 근심의 향연’이 이어질 것이리라.  

이러한 우려와 근심의 향연은 추락폭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데다가, 추락의 주요인이 국가운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정부관료와 정치권의 무능’에서 찾아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교육의 계급화’ 국가경쟁력 위기 심화의 요인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의 조사를 계기로 이슈화될 국가경쟁력 위기와 관련, 우리가 더욱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교육 문제이다. 

사실 국가경쟁력은 순위로 표시될 그 무엇이 아니다. 국가경쟁력은 다중들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 ‘사회구성능력’에 다름 아니다. 즉 국가경쟁력은 다중들의 삶의 터전인 사회를 유지·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교정·혁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우리는 ‘사회 전체의 운동성(mobility)’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사회 전체의 운동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교육문제이다. 사회전체의 운동성은 그 사회가 갖는 ‘학습능력’에 따라 좌우되며, 교육문제는 바로 이 학습능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느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학습능력의 향상에 있어 관건이 되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교육상황은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지반을 협소화시키면서, 결국 사회전체의 운동성,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감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때 핵심적인 것이 바로 ‘교육의 계급화’ 문제이다. 

최근 명문 사립대학들이 내신 평가에서 ‘고교등급제’를 실시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에 따라 학력차가 있어 불가피했다는 것이 대학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무책임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고교등급제의 실시는 사실상 빈부격차라는 사회계급적 균열이라는 기준에 의한 학생선발을 의미한다. 높은 등급에 속한 고교들 대부분은 중상류층들이 몰려 있는 강남의 8학군에 속해 있거나 일반 고교에 비해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특목고들이다. 실제로 명문 대학의 신입생들 중 중상류층 출신의 비중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교등급제의 실시는 사회 전체의 운동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학습능력의 향상과 이를 위한 보다 많은 이들에 대한 보다 높은 질의 교육 기회 제공을 계급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된다. 

국가경쟁력 논하기 앞서 자기반성부터 하라

이와 관련, 진보적 정치학자인 손호철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교육문제는 “우리 사회와 체제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단순히 가난한 부모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기회가 봉쇄되고 그 결과 계급적 대물림이 고착화될 때 그 체제의 정당성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음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교육의 계급화가 교정과 혁신은 커녕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재생산도 위협할 수 밖에 없는 사회운동성의 고갈과 학습능력의 파탄, 결국 회복될 수 없는 국가경쟁력의 위기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얼마전 한 사석에서 ‘열린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한 대학의 중견 정치학 교수는 이렇게 일갈하셨다. “우리나라 명문대학 교수들이라는 게 다 썩었어”라고. 고교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 쉬쉬하며 이에 대해 ‘양심고백’하는 교수를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임이자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한국 명문대 교수들. 이들은 세계경제포럼의 조사결과를 보면서 호들갑을 떨며 정부와 관료의 무능함을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부터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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