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노무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간 한·러 정상회담은 지난 90년 수교이래 ‘꼬였던’ 양국관계를 풀어내고 경제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물류관계자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인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문제는 ‘한반도 교통프로젝트의 필요성’이라는 표현으로 언급됐다.

다소 거창한 한반도의 교통어젠다를 거론하기에 앞서 우리의 철도 현실부터 돌아보자. 한국철도는 일제강점과 동시에 시작돼 105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 대량 화물수송 수단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경제활동과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한 철도가 근래엔 정부의 근시안적 도로위주 교통정책에 밀려 여객수송에 급급해 온 게 사실이다.

천문학적 자금이 투자된 고속철도는 상당한 적자가 우려되고, 기존 철도도 정책부재로 정부물자 수송마저 도로에 내어준 탓에 적자폭이 연간 700억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이는 오래 전부터 구마선, 중앙고속도로 등 일제강점기부터 수립되었던 철도계획을 도로 쪽에 내주고 진주-삼천포의 경우 기존 철도마저 걷어낸 것은 철도 화물정책 부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철도 적자감소를 위해 소화물의 경우 7~8년 전부터 적자를 보전할 것이 아니라 철도 택배 등으로 체질개선하고 2~3년 간의 적자보전 자금으로 노동대책을 수립하자는 철도하역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한 채 감소물량도 무시하고 400억을 투자 100량의 소화물 차량을 신조한 것도 철도 화물정책 부재의 구체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덮어둔 채 정부는 국민의 혈세 수십조원을 보조금으로 쏟아부어 철도 영업적자를 보전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고속철도공단,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공사 등 ‘간판교체’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같은 졸속 철도화물 정책의 한 켠엔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경제성장기와 외환위기를 거치며 소화물, 차급화물, 호송 등 역두(驛頭) 하역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며 한국 철도의 온갖 영광과 시련을 함께해 온 하역노동자들이 있다. 특히 이들 중 소화물 하역노동자들은 과거 철도공무원들이 수행하던 작업을 위탁받은 것이다.

전국 각 역두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모든 근로조건이 정부정책에 휘둘리면서도 물자수송이라는 공익성의 굴레 때문에 밑바닥 임금인 월평균 80만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철도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상황에서도 자체적으로 퇴직위로금을 갹출해 인력감축을 감내하면서 철도하역의 산업평화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이같은 협조적 자세를 오히려 악용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철도공사화를 눈 앞에 두고도 이들의 고용안정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나몰라라 하고 있다.

철도공사화를 이유로 철도화물 수송사업이 폐지되거나 축소된다면 이는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른 외부적·공익적 필요에 의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생존기반을 상실하는 철도 하역노동자들에겐 앞서 유사한 경우의 폐광, 폐염전, 폐어장 노동자들에게 석탄산업법, 염전관리법, 수산업법 등을 통해 보상방안을 마련해줬듯이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대책을 세워주는 게 마땅하다.

그간 정부물자와 서민물자 수송의 최일선에서 헌신해 온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지 않은가.

이제 바야흐로 남북교류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의 꿈이 현실로 다가올 조짐이 보이면서 철도는 물류혁명의 중추로 그 중요성이 제조명되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철도산업 구조개혁은 관행적으로 누적적자 보전에만 급급했던 그간 정책오류를 철저히 반성·시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효율적이고 장래성 있는 철도운영시스템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서 철도의 공익성과 관련산업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종사자들의 기여도를 조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공사화에 앞서 관련 산업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인 하역노동자들의 노동대책이 수립돼야만 하는 것이다.

공사화 시행 이후 철도공사가 이들 문제점을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을게 분명하다. 이 일은 공사에 미룰게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의 기본방향이나마 잡아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정치인들도 철도 위에서 평생을 바친 이들 하역노동자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하역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이 서린 역두에서 내팽개쳐지면 철도를 깔고누워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으로 시작되는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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