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언론사와 기자들이 국정감사에 ‘올인’하는 이른바 ‘국감 대목’이 한창인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가 자사의 보도태도를 비판하는 이례적인 글을 써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 정치부 정우상 기자는 10월 5일 밤, 자신의 블로그<사진>에 올린 ‘노무현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글을 통해 5일자 조선일보 주요 기사를 비판했다.
 

 
정 기자는 “저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이지만, 5일자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넌 뭐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주둥이는 살아 있어 이런 글을 쓴다”고 사뭇 비장한 어투로 글을 시작했다.
 
정 기자는 먼저 1면 톱 기사인 ‘미군 없이 한국군 단독 방어땐 남침 16일만에 서울함락’에 대해 “개연성(probability)은 있지만 가능성(possibility)은 매우 낮은 레포트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라며 “‘미군이 없어도 우리나라는 문제 없어’식의 단순 논리도 문제 있지만, ‘미군 없으면 우리는 죽어’라는 식의 극단적 가정 또한 여러 허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그 기사를 )기사화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사가 오늘의 가장 중요한 문제냐라는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두 번째로 금성출판사의 국사 교과서 관련 보도를 비판하며 “이 교과서는 ‘수정주의 사관’에 기초한 것이지, 본지가 보도한 것 처럼 ‘민중사관’에 철저히 기초한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 기자는 또 현행 교과서가 학교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검정제’임을 설명하며 “그 말은 뭐냐면 제 또래가 국가에서 만든 국사 교과서로 공부했지만 조금 머리가 크면서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경험칙이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과거의 국사교과서에 문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정 기자는 이어 “(이런 기사들이 기사가치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조선일보에서 정색을 하며 다뤄야 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며 “(이런 기사들에 대한 기존 매체들의) 백안시가 조선일보로 하여금 과도한 ‘사명감’을 촉발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 기자는 이 보도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반발도 ‘오버’라고 지적하며 “열린우리당 교육위 의원들은 그 교과서를 한번도 제대로 검토한 적도 없으면서 신문보도만 보고 분기탱천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조선일보의 ‘오버’를 정당화 시켜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텍스트(text)를 보지 않고, 컨텍스트(context)를 비판하는 최근 풍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정 기자가 토로한 ‘자성’의 백미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정 기자는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중독됐고, 열린우리당은 조선일보에 중독됐다”며 “사랑은 중독되도 좋지만, 증오는 중독되면 불행해진다, 모두가 불행해진다”며 글을 맺었다.
 
정우상 기자의 이러한 비판은 ‘안보’와 ‘노 정권 비판’을 사실상의 ‘사시’로 삼고 있는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안티조선=무조건 대의’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현 개혁진영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정우상 기자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 전문.
 
저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입니다.  그러나 10월 5일자 조선일보에 대해선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넌 뭐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유구무언입니다. 그래도 주둥이는 살아 있어 이런 글을 씁니다.
 
1면 톱 기사인 ‘미군 없이 한국군 단독 방어땐 남침 16일만에 서울함락’은 개연성(probability)은 있지만 가능성(possibility)은 매우 낮은 레포트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말입니다. 물론 최근 여론 처럼 “미군이 없어도 우리나라는문제 없어”식의 단순 논리도 문제 있지만, “미군 없으면 우리는 죽어”라는 식의 극단적 가정 또한 여러 허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 낮은 레포트를 오늘의 가장 중요한 기사로 다룬 것은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사화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사가 오늘의 가장 중요한 문제냐 라는 판단의 문제입니다.
 
둘째, 금성출판사의 국사 교과서 문제입니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브루스 커밍스의 표현을 빌리면 분명히 ‘수정주의 사관’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지가 보도한 것 처럼 ‘민중사관’에 철저히 기초한 것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민중사관 흉내를 낸 것입니다. 최근 국사 교과서는 과거 처럼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과서 중에 학교에서 선택하는 검정제입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은 다양할 수 있고, 금성출판사 교과서 처럼 다소 ‘삐딱한’ 교과서도 유통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학교에서 최근 시류에 맞춰 그 교과서를 지나치게 많이 선택했다는 것인데, 그건 하나의 ‘오버’라는 판단입니다. 그런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 말은 뭐냐면 제 또래가 국가에서 만든 국사 교과서로 공부했지만 조금 머리가 크면서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경험칙이 반증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중요한 것을 배우지 않습니다. 
 
두 기사 모두 기사 가치(value)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조선일보에서 정색을 하며 다뤄야 될 사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최근 언론매체들은 이런 기사 가치가 있는 기사들 조차 완전히 백안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반적인 백안시가 조선일보로 하여금 과도한 ‘사명감’을 촉발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입니다.
 
열린우리당은 당장 “참여정부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공세”라며 상당한 ‘오버’를 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에 검정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만들어 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교과서의 필자들은 ‘검정’이라는 검열 때문에 솔직한 자신들의 사상도 담아내지 못한 ‘절름발이’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열린우리당 교육위 의원들은 그 교과서를 한번도 제대로 검토한 적도 없으면서 신문보도만 보고 분기탱천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조선일보의 ‘오버’를 정당화 시켜줬습니다.  텍스트(text)를 보지 않고, 컨텍스트(context)를 비판하는 최근 풍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중독됐고, 열린우리당은 조선일보에 중독됐습니다. 사랑은 중독되도 좋지만, 증오는 중독되면 불행해집니다.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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