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노동자 블랑카입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가 개그맨으로 데뷔한 줄 알았다. 외모(?)며, 말투가 영락없는 외국인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랑카' 정철규(24)씨는 맛깔스런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토종 한국사람이었다. 순수혈통(?)인 그가 외국인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렇다.


“제가 개그를 하려고 했을 때, 사회 이슈가 됐던 것 중 하나가 외국인노동자 강제추방 문제였어요. 그땐 병역특례를 막 끝내고 난 후였는데, 제가 일했던 곳에 외국인노동자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블랑카가 됐죠.” 창원 공단지역의 한 업체에서 일했던 정씨는 외국인노동자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으며, 그들의 실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창원공단에서 만났던 친구들

“같이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형들이 외국인노동자를 더 많이 때렸어요. 한번은 계장이 나와 친한 중국인 친구에게 욕을 했어요. 그 친구가 왜 욕을 하냐고 물었더니 더 심한 욕을 퍼부으면서 작업 박스를 던지고 마구 때리는 거예요. 정말 너무 화가 났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행한 시사개그가 바로 ‘블랑카의 뭡니까 이게’였다. 그런데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를 낳은 이 개그는 3주만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것.

정씨는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아쉬웠다”고 말한다. “없는 사실도 아니고, 3년 동안 봐왔던 것들을 얘기한 것뿐이잖아요.” 진지한 개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즘은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단다.

“우리가 이 시대의 진정한 찰리채플린을 원한다면, 개그에 대한 넓은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넓은 포용력이 있어야 수준 높은 진정한 개그가 나온다”고.

“한국 싫어, 너 좋아”

아직도 함께 일했던 외국인노동자 친구들과 자주 연락한다는 정씨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고민도 남달랐다.

“우선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인노동자는 좋게 보면서도 동남아쪽 노동자들은 꺼려하고, 멸시해요. 그러다보니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땐 한국에 대해 불만만 가득한 거죠”

친했던 외국인노동자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그 친구와 정씨는 꼭 껴안고 함께 울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씨에게 고맙다면서 “한국 싫어! 너 좋아!”라는 말만 했단다.

“마음의 상처만 안고 돌아가는 거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도 힘들고, 일도 힘든데 천대까지 받으면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어요? 저랑 친했던 우즈베키스탄 친구는, 고국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만에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죠.”

“세상은 강자 편이지만...”

요즘 그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를 자주 찾는다. 외국인노동자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같이 축구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정씨는 “제 말투를 따라하면서 어설픈 말로 고맙다고 얘기하는 걸 들으면 오히려 제가 너무 고맙다”고 고백한다.

“세상은 항상 강자 쪽에 서는데, 그분들은 약자거든요. 그래서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찰리채플린'으로 다가가고 있는 '진정한 개그맨' 정철규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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