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유연화는 사실상 노동강도의 강화를 가져옴과 동시에 특히 조직노동자 즉 노동조합의 조직역량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정부의 노동정책은 다소 세련된 외양을 갖추어 왔을 뿐 실제 내용은 과거의 노동억압적 정책을 연장해 왔다. 노동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개혁적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파견근로자의 양성화를 통하여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는 시도를 하는가 하면 이 모두가 노동력 공급 및 생산성 증대라는 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노동의 유연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다. 파견은 법으로 금지하는 것보다 시장변화에 조응해 업종을 네거티브리스트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언뜻 보기에 앞의 두 발언은 진보적 입장에 선 학자나 노동운동가의 말로 들리고 세번 째 발언은 보수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모두 김대환 노동부장관의 표현이다.

첫 대목은 김 장관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97년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발췌했다. 가운데 대목은 1994년 ‘동향과 전망’이라는 무크지에 기고한 글이다. 셋째 발언은 지난 1일 비정규공대위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파견제 양성화를 ‘자본의 요구에 충실한 제도’라고 비판하고 노동유연화 주장에 거리를 두고 노동운동을 옹호해왔던 '김 교수'는, 올해 2월 장관에 취임한지 겨우 8개월 만에 노동계로부터 퇴진 요구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김 장관 또는 김 교수는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고 말았을까.

김 장관의 잘 아는 노동계 일각에서는 김 교수의 이런 처신을 두고 “참여정부에 속한 행정 각료의 입장에서 청와대나 정부 타 부처와 손발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보는 ‘코드론’을 제기한다. 즉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장관도 개인 의견을 유보하고 참여정부의 ‘코드’에 자신을 맞춰나갈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매 맞아 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린다”며 스스로 노동계나 노동문제를 잘 안다고 여기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환 장관은 처음부터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고 정보를 접하는 양에서도 제한적이었던 학자 시절에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지만, 막상 책임 있는 위치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공식 비공식 정보를 접하면서 ‘판단’ 자체가 바뀌었다는 설이다.

이런 주변의 평가들을 김 장관도 대략 의식하고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이다. 김 장관은 지난 7월 30일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주최 포럼에서 “노동계는 노동부 장관자리로 가더니 치안총수 됐다는 말도 한다”며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동계에 대해서도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섭섭해 하다가 이제는 공격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4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국보법 사수와 사립학교법 개정반대'를 주장하는 우익 보수단체들의 집회에 참석해 격려하고, 5일에는 북한인권법의 미 하원통과를 환영하는 논평을 냈지만, 이제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는 누구하나 김 의원을 나무라는 이가 없다. 그는 '변한 지 오래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인은 다르다. 지식인의 말 바꿈에는 '해명'이 필요하다. 노동계는 아직 김 장관의 해명을 듣지 못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