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당초 약속대로 2007년까지 단속을 유예해 성매매 종사자들이 생계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해달라."

1일 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선 성매매 종사 여성 200여명이 모여 정부의 최근 성매매 단속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실제 주로 나온 얘기는 정부의 단속 유예 요구였다.

모두 돈이 절박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당초 약속대로  2007년까지만 단속을 유예해 주면 그때까지만 일하고 깨끗이 손을 털겠다는 것.

단속 기한을 명확히만 하면 향후 유입될 성매매 종사자들도 처음부터 이를 받아들이고 일하는 만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신 불법 영업 업소에 대해선 철저히 단속하면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날 모임에서 대책위원회 회장을 맡게 된 김모씨는 "성매매는 우리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고 직업"이라며 "제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필요악 아니냐"며 "없애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유예 기간만 주면 열심히 한 뒤 정리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절한 사연이 많았다. 고1짜리 자녀가 있다는 강모(37)씨는 "원래 간호사였는데 사업하던 신랑이 망하면서 자살했고 그 때문에 1억원 가량 빚을  지면서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어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폐암으로 7년간 앓고 3차례 수술 끝에 결국 돌아가시면서 지난 4년간 번 돈이 모두 치료비와 빚 갚는 데 들어갔다"며 "지난해 12월 겨우 빚을 다 갚고 이제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생계를 막으면 어쩌란 말이냐"고 했다.

강씨는 "신용불량자에서 해제되면 대출이라도 받아 산후조리원을 차리는 게  꿈인데 그 꿈이 지금 산산조각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단속을 계속하면 더 음성적으로 혼자서라도 성매매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다른 한 여성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일하다 아버지 병 치료비와 동생들 학비를 대다 보니 하루 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병원비만 한달에 300만-400만원이 드는데 대기업 월급으로도 감당할 수 없었고 당장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여성부와 여성단체, 언론 등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김씨는 "우리는 돈 벌기 위해서 한 여성으로서 자존심도 버리고 하는 것 아니냐"며 "50만원 정도를 지원해준다는 여성부의 대책은 그들만의 대책일 뿐 언제 우리 얘기라도 들어본 적이 제대로 있느냐"고 토로했다.

다른 김모(30)씨는 "여성단체는 물수건과 콘돔을 돌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느냐"며 "자신들의 자존심을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진정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라면 우리들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여성도 "여성부는 폐쇄하기 전에 이곳 실생활자들의 의견을 먼저  물었어야 했을 것"이라며 "여성부가 우리에게 월급을 주느냐"고 했다.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무의식 속 편견에 따라 기사를 쓰는 데 정말 기분 나쁘다"며 "사실 그대로만 써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선 회장 등을 비롯 대책위 집행부가 꾸려졌고 오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 성매매 여성 등이 모여 개최할 대규모 집회와 관련해  업소들 간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문제 등이 논의됐다.

최근 자살을 기도한 윤모(24)씨를 위해 성의 차원에서 모금하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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