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건강보험직장노조(위원장 배정근)와 한국뇌성마비연합회(회장 류흥주)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중증장애인 전동휠체어 건강보험 확대적용 추진연대(전동연대)’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4일 두 차례 공청회를 하고, 준비모임도 가지면서 전동휠체어 건강보험 적용 확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2005년도부터 건강보험 예산에서 중증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전동휠체어 구입비를 전액 반영하자는 것이다. 전동휠체어 이용자인 중증장애인 황백남씨를 만나 전동휠체어가 중증장애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이런 몸으로 무슨 일을 해요?” 비장애인들이 황백남씨(38, 서울 양천구 신정동)를 보고, 흔히 내뱉는 말이라고 한다. 지난 94년 교통사고로 인해 중도장애인이 된 황씨는 전동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다.

그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한 전동휠체어 200대 나눔사업의 실사단 활동을 할 때, 비장애인들은 황씨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몸도 불편하면서 다른 사람 보내지 왜 아저씨가 와요?” 장애인이 일을 한다는 것이 못내 놀랍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황씨는 실사를 위해 전동휠체어로 인천 전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더러는 자기 아들보다 장애가 심한데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면서 우리 아들도 전동휠체어를 신청했는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 시켜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황씨는 그럴 때 정말 전동휠체어를 미리 체험하는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느낀다.
황씨는 현재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이 직접 장애인을 대하는 게 오히려 상담효과가 높다고 한다.

“집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재가장애인들이 상담을 요청하면 어떤 상담가들은 사무실로 방문해달라고 얘기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비장애인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장애인에게 오라 가라 하는 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직접 그들을 찾아간다. 재가장애인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무척 활동적인 황씨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올해는 황씨가 장애를 입은 지 꼬박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그 10년 중 6년을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냈다.

“천장의 꽃그림은 다 세어봤어요.” 집에 있는 동안 뭘 했냐는 질문에 선뜻 나온 대답이다. 그의 6년 동안의 ‘칩거’ 생활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퇴원하는 날(95년), 비가 부슬부슬 내렸어요. 수동휠체어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잡는데 3시간 동안 비를 맞으면서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세워주는 택시가 없더라구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 사건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였음이 분명하다. 이동할 수 없는 권리가, 그를 6년 동안이나 집안에 묶어둔 것이다.

“상담을 다니다보니 다들 저랑 똑같더군요. 뭔가를 하려고 해도 가정 내에서 ‘너는 아무 일도 못한다. 무슨 일을 줘도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막아버리는 거죠.”

황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황씨는 같은 위치에 처한 동료장애인의 부모에게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10가지 걱정할 게 있다면 8가지만 걱정하십시오. 나머지 2가지 걱정은 본인이 실패를 하더라도 직접 겪어보게 해주십시오. 나중에 의지할 부모님도 안계시다면 저분이 갈 곳은 어디겠습니까”라고.

‘세상의 편견’ 바꿀 용기 준 전동휠체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전동휠체어였다.

“98년 장애인의 날이었어요. 1년 내내 보이지 않던 장애인들이 하루 동안 TV에 수없이 나오는 그런 날 말입니다. 우연히 전동휠체어를 탄 몇몇 장애인들을 보고, 나도 전동휠체어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가 병원에 있을 때 탔던, 그의 몸에 딱 맞던 전동휠체어는 당시 1,200~1,500만원을 호가하던 제품이었다. 그 가격을 알고는 전동휠체어라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TV를 통해 그보다 더 저렴한 전동휠체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전동휠체어에 대해 자료수집을 시작했다. 당시에도 전동휠체어는 300~400만원을 호가했지만 건강보험에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작해야 20~30만원만 지원할 뿐이었다. 턱없는 건강보험료에 황씨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씨는 큰맘을 먹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전동휠체어를 사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300~400만원은 너무 큰 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98년도는 많은 서민들이 IMF 외환위기에 허덕일 때였다. 결국 황씨는 자신의 장애에 꼭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저렴한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쉽사리 전동휠체어를 타지 못했다.

“2년 동안을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머뭇거렸어요. 매일 꿈속에 전동휠체어가 나오고, 그걸 타고 여행도 다니고 그랬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러다 2000년 우연히 장애인들의 온라인 친목카페를 통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또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자신감도 얻었다.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만나는데 자신감도 생겼고, 이후에는 혼자 여행도 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문득 여기서 끝낼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직장생활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모임에서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호 소장과 김성은 사무국장을 만났어요. 센터 개소식할 때 무작정 찾아가서 여기서 무슨 일이든 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월급 같은 것도 당장 받지 않아도 좋다고.”

장애인도 ‘사회’와 ‘관계’를 맺고 싶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증장애인들은 어떤 수입보다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연결 고리를 필요로 한다. 이웃 사람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직장 동료들과 술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사회생활을 원한다는 것.

“우리가 바라는 것은 크지 않아요. 당당하게 세금도 내면서, 내 지역에서 이웃과 함께 같이 살고 싶은 거죠. 따가운 시선 속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 시선들이 무서워 집에서 웅크리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깨고 나와야겠지요. 우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하다못해 동네 골목이라도 왔다갔다하면서 이웃들을 사귄다면 그들의 시선도 바뀌겠지요. 집에 있는 장애인들이 집에서 나올 수 있도록 전동휠체어를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주위의 인식도 차츰 바뀔 테고, 장애인들도 비로소 사회생활과 노동을 할 수 있는 발이 생기는 거니까요.”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30% 정도만이 취업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중 89%가 실직상태에 있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취업은 넘기 어려운 산일뿐이다. 노동의 권리 이전에는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이동할 권리 이전에는 이동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동연대는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책은 건강보험에서 전동휠체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날개 없는 비행기랄까요, 이게 꼭 그래요. 제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주죠.” 전동휠체어에 대한 황씨의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택시 잡는 곳까지 그가 배웅해줬다. 택시 기사아저씨가 대뜸 “저 분도 같이 타시는 줄 알았는데, 혼자 타시네요.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을까 뒷좌석에 실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신다.

그가 처음 퇴원을 했을 때, 이런 택시 기사아저씨를 만났다면 어쩌면 그는 6년이란 세월을 집에서 보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전동휠체어를 통해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더 많은 다른 중증장애인들에게도 전동휠체어가 주어진다면 그들도 비장애인처럼 ‘사회적 인간’으로 대우받으며 살지 않을까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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