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최근 소식을 접한 호주건설노조의 한인커뮤니티 대의원 신준식씨가 글을 보내왔다. 현재 시드니대 노동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신씨는 호주의 노동제도가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해 추가수당을 지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점을 소개하면서 정부의 법안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해소와 권리보장에 대단히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편집자주>

호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규정하는 개념은 간단하다. 비정규노동자는 1년에 4주간의 유급 휴가와 유급 병가를 못 받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런 혜택이 없기 때문에 동일노동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1년에 4주의 휴가와 유급 병가를 못 받는 것을 ‘추가 임금(Casual Loading)’으로 계산해 더 지급하도록 한다. 즉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노동을 하고 있으면 정규직이 받는 임금에 15~30% (금속산업 노동자의 경우 25%, 대학의 직원은 23%, 건설 노동자는 25%)를 추가로 더 받는다. 이런 공정성을 호주 사회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가 쓴 “비정규직 ‘대반란’ 은행권 ‘시한폭탄’”이라는 기사 내용을 참고하려고 한다. 그 기사는 “모 은행에서 10년간 정규직으로 근무했다가 명예퇴직 후 3년 전부터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허아무개 (41)씨는 같은 나이 정규직 차장이 받고 있는 연봉 (7,800 만원)의 19.2%인 1,500만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호주 임시직,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 받아

허아무개씨가 만약 호주에서 같은 나이의 차장과 동일노동을 하면서 1년 4주의 유급휴가와 유급 병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일년에 정규직 차장이 받는 임금 총액에 15%~30%의 ‘추가임금’을 보태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호주와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급되는 임금 기준부터 다르다.

호주와 같은 임금 체계는 공정성(Equity)의 원리가 전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가능하다. 이 원리가 호주에서는 보수당인 자유·국민당 정부 아래서도 통용된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공정성의 원리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한국의 국민이고 그 들도 법 앞에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6월2일에 있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공동 주최하고 노사정 대표들이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김선수 변호사가 한 말에 동의한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문제를 떠나 사회정의, 인권, 사회통합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 사회정의로 보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합리화된다고 하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회의 절대 다수가 절망하는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올라가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회인식이 유지되는 이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유럽 사례를 참고했다고?

나는 감히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한국에서의 시도들이 거의 잘못되었다고 본다. 특히, ‘참여정부’ 임을 자랑하는 노무현 정부가 9월10일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라고 공개한 법안에서는 공정성, 사회정의, 인권 그리고 사회통합이란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참여정부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 법안을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공정치 못한 법 때문에 다수의 국민인 전체노동자의 55.4%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망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한 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최악의 법안이라는 비판에 대해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직 대책과장이 반론을 제기하는 글이 지난 9월14일 매일노동뉴스에 실렸다. 그는 이번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위해 ‘유럽의 입법례’를 참고했다고 했다. 그에게 묻고 싶다. 유럽의 어느 나라 입법례를 참고했는가? 그리고 참고만 한 것인가 아니면 반영을 한 것인가? 지금이라도 호주의 예를 반영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노동조합들도 이런 공정성, 사회정의, 인권 그리고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 졌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이런 관점을 생각할 여유 없이 힘겹게 싸워 왔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허아무개씨가 받는 임금이 차장 임금의 19.2%라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상황은 정부와 사용자들만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공정성,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을 빼고 나면 무슨 명분으로 정부와 사용자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비정규직 권리보장이 정규직을 위한 길이다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선책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왜냐하면 사용자들과 보수적인 노무현 정부가 무방비 상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돈 많이 드는 정규직 노동자들 보다 더 선호하게 되어 차차 정규직 노동시장도 무너져 내려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전체 노동자들 중 55.4 %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지난해 은행의 신규인력의 83%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 이것을 입증한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운동이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호주 노동조합은 완전고용 시대가 끝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기기 시작한 1970년부터 인식하고, 비정규직 권리 보장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능력을 총동원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에 민주노동당이 이 문제 해결을 게을리 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존재 가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문제에 힘쓰지 않는다면 이미 55.4%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참히 차별하면서 ‘사회적 대화’와 ‘사회통합’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호주에서의 임시직 관련 최근 논의들  

연방 노동당이 비정규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시직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4월18일 발표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첫째, 임시직 노동자는 6개월 근무 후부터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둘째 1년 근무 후에는 정규직을 요구할 수 있다, 셋째 호주 노사관계위원회에게 비정규직 관련 분쟁에 대한 조정 및 강제권을 주는 등 노사관계가 분권화 되면서 약화된 권한을 다시 부여하여 중앙 중재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병가나 연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현재 호주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1년에 4주의 연가, 병가 등 휴가가 없는 대신 정규직 보다 15~30% 정도의 임금을 더 지급 받는다. 여기에 고용주는 퇴직금으로 임금의 9%, 정리해고 수당으로 임금의 6% 정도를 따로 적립해 주거나 지급해야 한다.

이런 금전적 보상에도 불구하고 임시직 노동자가 1996년 연방 자유·국민당이 집권한 이래로 약 40% 증가하여 현재 약 220만 명에 이르는데 이 숫자는 전체 노동자의 27%이다. 특히 임시직 노동자들이 주택 융자를 받기가 까다롭고, 경력과 진급 등에 문제가 발생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연방노동당의 새로운 정책 입안의 근거이다.

이번 노동당 정책에 대해 사용자 단체들은 노동당이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압박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게 하고 있다고 혹평하면서, 고용 비용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연방 노동당은 비용은 발생하지만 공정성(Equity)을 보장하는 타당한 정책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지난 7월부터는 임시직 노동자들도 호주노총과 사용자단체들과의 합의에 의해 가족이 아플 경우 금년 말부터 병가를 신청 할 수 있다. 한편 빅토리아 주 법원이 임시직에게도 장기근속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이 결정이 차차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장기근속 수당 지급은 각 주 정부 관할인데, 통상적으로 10~15년간 한 회사에서 계속 근무했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약 9주간 유급 휴가를 갖거나 9주간의 임금에 해당하는 수당을 받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내놓은 법안은 참여정부를 부끄럽게 만든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민변의 회원이란 사실과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노동 문제를 잘 아는 ‘민주인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비정규직 문제는 공정성이란 원리에 의해 풀어가야 한다. 그러기에 이 문제는 ‘참여정부’만 비판할 수는 없다. 그 비판의 대상에는 민주노동당과 노동조합들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실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공정성을 지키도록 하는 것으로서 아직도 개선할 점이 많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공정성의 원리가 학계, 정당 그리고 노동조합 그리고 다수의 국민에 의해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뭉쳐 싸우지 않는다면 호주 노동자들의 미래도 어두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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