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실을 점검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총파업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한 정부가 지난 2년 동안의 노사정위원회 논의보다 후퇴한 안을 발표했다며 특수형태종사근로자의 대책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정부안의 핵심은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남용규제”라며 “노사정위 공익안 중 반영된 부분도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안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봐 달라는 의미다.
물론 노사정위 공익안 가운데 △차별금지원칙 명문화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 제한 △중요 근로조건 서면화 등의 내용이 법안에 반영되긴 했지만 노동계는 ‘파견업종 확대’가 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태풍’의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이처럼 ‘파견업종 확대’는 노동계 반발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다.
실제 노사정위 공익위원들도 ‘파견업종 확대’와 관련해서는 노동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은 왜 파견확대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을까.
공익위원들의 판단 근거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2001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2년 동안 비정규직보호법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노·사·정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채, ‘공익안’을 정부에 이송했다.
이 가운데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파견대상 업무 확대와 관련해 공익위원들은 “26개 업무 허용 등 현행 방식을 유지하되, 다만 그 업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별도의 노사참여기구를 설치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노동시장 상황을 검토하면서 단계적으로 허용 업무를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주목할 것은 공익위원들과 비정규직 대책 논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파견업체까지 직접 방문하는 등 ‘현실 파악’에 상당한 노력을 통해 이러한 결과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박스 기사 참조>
노사정위가 지난해 말 펴낸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한 2년간의 논의 과정과 공익안 내용이 담겨있는 ‘기간제·파견·단시간 근로 논의자료집’에 따르면 공익위원들은 파견근로의 질서가 아직 확립돼 있지 않은 우리 여건에서 전제 없이 허용업종을 자유화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으로 못박고 있다.
특히 공익위원들은 “정부가 파견업종 전면 확대로 현재의 불법영역을 합법영역으로 전환해 합법 공간 내에서 적절한 규제를 통해 파견근로를 규율해 나가고 불법을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조를 차단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과제가 많다”고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정부가 “어차피 불법파견이 만연돼 있는 현실에서 합법공간을 넓히는 대신, 파견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차별금지와 이후 발생하는 불법파견을 확실히 조치하는 것이 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주장에 대해 공익위원들이 충분한 검토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회의적으로 봤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파견업종을 전면 확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공익위원들이 최종 견해였다.
파견확대 이전, 해결과제 산더미
공익위원들은 우선 네거티브 리스트로 전환한 선진국(독일, 일본 등)의 경우 파견근로자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우리보다 더욱 견고한데다, 우리의 경우 파견근로는 근로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지난 98년 파견법이 제정된 뒤 근로감독관 업무에 근로자파견법 위반행위에 대한 규정이 없었던 이유로 6년 동안 파견업무에 대한 상시적 근로감독이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파견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직접 사법처리하도록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파견근로가 고용·사용관계가 분리되는 새로운 고용유형으로 파견법, 근로기준법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의 복합적 적용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등 파견근로에 대한 근로감독행정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한 현재 근로감독 기능이나 인력 등으로 강력한 법 집행력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아, 파견을 전면 확대하는 대신 불법파견을 엄정 집행하겠다는 정부 주장의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익위원들은 파견근로가 노사간 고용의 ‘삼각 관계적’ 특성을 갖는데, 우리는 이 부문에서 노사간 교섭력 불균형이 두드러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비정규직대책특별위원회 12차 회의에서 김소영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근로자파견법의 쟁점과 개선과제’라는 발표를 통해 “파견사업체와 사용사업체간의 교섭력 불균형은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 파견사업주는 지나친 단가 경쟁으로 사용사업체와 교섭력을 깨트리고 있고 이는 결국 파견근로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파견사업체와 사용사업체간의 교섭력 확보를 위해 사용사업체가 일방적으로 파견사업체와의 근로자파견 계약을 해지할 경우, 파견사업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 우리나라 파견회사의 대다수는 소규모이고 영세해 과당경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반면, 전문적 인력공급회사로서 필요한 파견회사의 전문성 확보 및 과당경쟁을 억제할 대형화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공익위원들은 꼬집고 있다.
노동부가 조사한 파견사업체 현황을 보면 50인 미만 파견업체가 전체 1,114개 가운데 644개로 57.8%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공익위원들은 “독일, 일본 등이 파견 전면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을 감안해 허용업종의 재조정에 있어서 단계적 접근법을 제시하게 됐던 것”이라고 밝혔다. 공익위원들은 또 “파견근로의 궁극적인 해법을 위해서는 ‘중장기적 대책’으로 파견, 용역, 도급에 관한 현재의 법률을 노동공급에 관한 하나의 통일적 법률로 정비 규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비정규근로자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윤성천 광운대 교수) 공익위원으로는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경영학과), 강순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현 중앙고용정보원 원장), 이상윤 연세대 교수(법학과),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교양학부),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산업경영학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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