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 증시와 재벌의 관계

올들어 9월15일까지 12월 결산 상장법인들은 자사주 매입에 5조2,050억원, 중간배당에 1조3,320억원 등 6조6,370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에 이들 상장법인이 올린 순이익 26조8,400억원의 24.3%에 이르는 규모다. 외국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우량주의 경우 이 비율은 껑충 상승한다. 기아자동차는 상반기 순이익 3,533억원 가운데 40%인 1,366억원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순이익 6조2,719억원 가운데 44.3%인 2조7,811억원을 자사주 매입(1조9,900억원), 중간배당(7,911억원)에 썼다.

게다가, 지난 2003년 국내 상장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본은 7조1,662억원인 반면, 배당금으로 지출한 규모는 7조2,391억원이었다. 배당금액이 유상증자금액을 웃도는 것은 1962년 주식시장 개설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주식시장이 자본을 조달하는 발행시장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달리 표현하면, 발행시장 구실을 하는 데 점점 더 높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통한 외부금융의 미미한 조달은 주요한 선진국들이 이미 겪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내부유보 이윤 등 내부자금이 기업투자 재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은 도대체 무슨 구실을 하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은행 등 다른 채권자들이 벤치마킹을 통해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기본 수익률로 삼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내부화’ 과정이라고 불리는 게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주식의 역할은 기업에 금융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유상증자의 규모가 크든 작든, 주식은 내부화 과정을 통해 유보이윤을 포함해 기업 금융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 둘 - ‘촌수’만 다른 내부거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 3곳이 최근 2~3년 동안 현대차그룹에게서 일감의 90% 이상을 받으며 급성장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문제의 회사들은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인 엠코(글로비스 지분 59.72%), 운송회사인 글로비스(정의선 지분 60%), 카오디오 및 자동차전장 부품사인 본텍(정의선 지분 30%, 글로비스 지분 30%)이다. 엠코 매출액의 80%, 글로비스 매출액의 90%, 본텍 매출액의 91%가 현대차그룹과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것이다. “이 세 계열사의 회사의 성장과 수익 증가는 배당금 확대와 주식가치 상승을 통해 정 부사장의 재산 증식으로 이어지게 된다.”(한겨레 9월17일치)

그룹 차원의 내부거래는 현대차그룹의 매우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1998년 12월과 99년 3월 사이에 벌어진 현대차 경영권을 둘러싼 정씨 일가 내부의 다툼 과정에서도 부당 내부거래가 핵심적인 불씨였다.
 
당시에 벌어진 정몽구 회장과 정세영 당시 명예회장의 치열한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정세영 명예회장이 실질적으로 소유·지배하고 있는 계열사를 통해 현대차에 비싼 가격으로 축전지나 차륜을 납품했다는 상당한 신빙성 있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현대차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규씨였다. 결국 이런 부당 내부거래 의혹으로 말미암아 현대차를 키워온 정 명예회장은 정몽구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퇴진했다.

이와 견줘볼 때 업계에서는 이번 내부거래가 정세영씨가 정몽구씨로, 정몽규씨가 정의선씨로 바뀌었을 뿐 그룹 안에서 직계 존속의 위치를 강화시키는 차원에서 당시에 벌어졌던 내부거래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번 내부거래에 부당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 셋 - ‘재벌 주주’들의 전횡

삼성물산은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산하 18개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핵심 회사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의 지분은 12.88%(이건희 회장 지분 1.38%)인 반면, 외국인 지분은 45%에 이르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9월17일 삼성물산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삼성에스디아이를 동원했다. 삼성에스디아이가 삼성물산 주식 700억원 어치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에스디아이 보유 삼성물산 지분은 기존 4.52%에서 7.2% 가량으로 늘어나게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4.02%를, 삼성전자는 삼성에스디아이 주식 20.9%를 갖고 있다. 완벽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이런 결정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온갖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며 출자총액제한제를 없애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총수일가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순수 재벌체제를 고집하는 삼성그룹의 이해는 전경련조차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되레 재벌체제의 고질적 병폐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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