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0일 발표한 정부의 ‘비정규보호입법안’에 대해 이미 파견법 폐지 등을 뼈대로 한 비정규보호법안을 입법 발의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의 강문대 보좌관이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단병호 의원은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1차적인 법안 심의를 담당할 국회 환경노동위에 소속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편집자주>

노동부는 지난 9월10일 자칭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공개한 후 그 정당성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노동부는 자신들이 보호하겠다고 나선 ‘비정규’ 노동자들이 열린우리당 의장실을 점거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해도, 그것을 노동자들이 위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단체들을 상대로 법안 설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정서를 이처럼 읽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부가 다음과 같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노동부는 ‘비정규직 증가가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우리나라 경제 현실상 불가피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소위 노동을 유연화 시켜야 기업이 존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비정규직 증가가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는 것은 제 논 물대기식의 일면적 고찰에 불과하다. 그렇게 볼 근거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사회보장 및 노동기본권 보장실태가 우리와 다른 외국의 실태를 우리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고 자본의 세계적 지배 과정에서 비롯되는 현실을 우리가 수용하고 긍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노동유연화가 기업에게 엄청난 편익과 단기적 비용절감의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경제나 고용에까지 긍정적 효과를 준다고 단언할 근거는 전혀 없다. 현재 경제 위기가 내수침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입장에서 보면 노동유연화가 오히려 경제위기를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할 것이고,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반복적인 실업을 유발시킨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올 6월에 한국노동연구원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만프레드 바이스 교수(세계노사관계학회 전 회장)는 독일에서의 기간제 도입이 고용촉진을 유발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노동부의 위와 같은 판단은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체득한 ‘신앙’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둘째, 노동부는 이번 법안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한 차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동부는 현 제도 하에서 기간제 계약이 아무런 규제 및 보호조치 없이 반복 갱신되는 것과 파견에 따른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하도급 및 용역이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위 법안이, 비록 문제점이 많다고 해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부의 위와 같은 태도가 정당하려면 노동부가 상정한 ‘최악의 상황’이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차악’도 분명히 악이기 때문에 존립할 근거가 없다.
 
그런데 노동부가 상정한 ‘최악의 상황’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차악’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유효적절한 제어책이 있기 때문이다. 즉, 기간제에 규제가 없는 것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통해, 하도급이 남용되는 것은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 확립을 통해, 또한 사유 설정을 통한 기간제의 제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하도급 계약 해지의 부당노동행위성 인정, 불법하도급에 대한 엄격한 감독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노동부는 파견법이 없으면 불법하도급을 근절할 근거가 없지 않느냐고 반박하기도 하는데, 민주노동당안이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직업안정법에 근로자공급사업과 하도급의 구분 기준을 엄격히 규정하면 그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굳이 위와 같은 것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차악’을 도입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동부가 도입한 ‘차악’이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라는 점이다. 노동부 안은 기간제를 제도적으로 용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지금도 기간제의 반복 갱신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제도적으로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에 1년 이내에만 기간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 및 대법원이 기간제가 반복 갱신된 경우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사용자들의 ‘탈법적 사용’을 노동부와 법원이 묵인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파견제를 사실상 기간 제한 없이 전 업종에 걸쳐 허용하고 있다(건설업의 불법파견은 며느리도 아는 사실이고, 파견의 금지구역으로 알려진 제조업에 대해서도 간접공정과 지원부서에는 파견이 허용된다).
 
결국 합리적 사용자라면 정규직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최소한 10년 뒤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고용체제 더 나아가 사회의 기본적 체계를 뒤흔들 것이다. 사용자에게 절대적 힘의 우위가 확보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생존의 기반이 불안정하고 굴욕적 노동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명백한 사실을 노동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신앙’이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셋째, 노동부는 위 법안에 담긴 ‘보호조치’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즉 위 법안에 담긴 보호조치로 인해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노동부의 그러한 낙관성과 천진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그래서 자꾸 신앙 운운하는 것이다). 노동부가 생각하는 보호조치는, 기간제에 대해 3년 후 고용보장 방안, 파견제에 대해 휴지기 설치, 둘 다에 대해 차별시정조치 마련이다.
 
그것이 진정한 보호조치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3년 후 고용보장 방안이라는 것은, 사용자가 2년11개월만 고용했을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된다. 한 쪽이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조치를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보호조치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내가 총을 가지고 있지만 총알은 상대방 손에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3년 후에도 고용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 사유가 너무 많다(총도 고물이라는 것이다). 포괄적인 사유가 5개나 된다. 그 중 압권은 대통령령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라고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부 의지대로 기간 제한이 없는 기간제의 사유를 맘대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계약이 아무리 갱신되어도 정규직이라고 다툴 수도 없다. 다툴 여지가 있는 지금보다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휴지기라고 하는 것은 어떤가? 3개월간 파견을 못 쓰게 하면 사용자들이 파견을 안 쓸 것이라고? 그 3개월간 그 직전의 파견노동자를 임시직으로 다시 쓸 수 있는데도 그렇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더구나 파견의 주된 공략 대상이 될 50세 이상의 자에 대해서는 그것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차별시정조치라고 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안 한 것보다야 분명 낫지만, 비정규직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차별을 하면 사용자가 1억원의 과태료를 낸다? 기자들이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그리 써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차별을 해도 사용자들이 받는 처벌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차별로 확정된 것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만 1억원까지 과태료를 부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차별’이 언제 확정되냐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단 2년이다. 시정되는 차별도 모든 차별이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이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이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부 설명을 따르더라도 ‘합리적’ 임금 차별이 용인된다.
 
이상이 노동부가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이해 방식 및 그 문제점이다. 나는 노동부가 지금이라도 다시 균형감각을 회복하여 현실을 제대로 볼 것을 간절히 바란다. 경제개발의 주술에 빠져 노동자의 기본적 생존권을 유린한 개발독재자들의 ‘말로’로부터 깨침을 얻기를 바란다. 경제개발도 해야 하고, 고용창출도 해야 하지만 그것들을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진 자들의 것을 손대지 않은 채 어떤 정책을 실현하려니 자꾸만 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것을 다 손 댄 후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때 지금과 같은 논리로 위와 같은 ‘보호대책’을 마련하라. 그러면 나부터 그것을 지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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