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신림교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김원팔(61·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씨의 한 달 소득은 70~80만원이다. 그마저도 장사가 잘 됐을 때 얘기다. 비가 많이 와서 장사를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은 여름철에는 한 달 소득이 2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 60만9,842원에도 못 미치는 50~60만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김원팔씨는 “할머니랑 나랑 둘이 사니까 살기는 살지 뭐…”하며 웃음 짓는다. 그러나 누군가 아프거나 다치기라도 할 때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하루 1, 2만원의 고정되지 않은 수입으로는 저축도 할 수 없는 형편.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데 저축이란 걸 할 수 있나.”
그러나 김원팔씨에게 경제적 어려움은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밥을 굶진 않잖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지.” 그것보다 더 힘든 건, 가난으로 인한 세상의 차별과 멸시다.
“구청에서 자꾸 나와서 우리 물건들 실어가고, 딱지 떼고… 그런 것들이 참 힘들어. 여차하면 나와서 물건들 싣고 가니 어떻게 살겠어.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인데 말이야.” 김씨가 신림교에 터를 잡고, 뻥튀기 장사를 한 것도 어언 10년이다. 그는 그 10년 동안 구청과의 싸움을 수차례 반복했다.
“돈이 없다는 게 참 서러운 거야. 그냥 나 혼자서 밥 굶지 않고 살면 괜찮은데,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매도 맞고 짓밟히기도 하거든. 구청에서 (장사하는 물건) 다 가져가버리면 그거 찾아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싸워야 되는데. 돈 있으면 누가 길거리에 나와 이런 장사를 하겠어?” 탄식하는 그의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단속이 하도 심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노점상연합에도 가입했어. 배운 것도 없고, 힘도 없어서 맨날 당하기만 했는데, 노점상연합이란 델 가입하니까 우리가 얘기하는 것들을 (구청에서) 조금씩 들어주는 거야. 그래서 요즘엔 물건들 압수당하면 단체로 가서 항의하고, 찾아오기도 해.”
그는 노점상연합을 통해서 함께 뭉치는 것, 즉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알았다고 한다. 같은 조건에 처한 많은 사람이 뭉치면 언젠가는 빈곤으로 인한 세상의 차별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정치하는 사람들도 알아야 돼. 돈이 없어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한테 제약은 하지 말아야 하잖아.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뭘 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그는 정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냥 언제 단속이 나올지 마음 조리지 않고 편히 장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돈 없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아. 분명히 자기가 직접 보고 물건을 샀는데, 다리도 채 건너기 전에 다시 돌아와. 그러면서 안 산다고 돈을 돌려달라는 거야. 자기가 직접 보고 샀는데도 그러는 건 사람을 무시하는 것밖에 안돼. 왜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개도 웃고 간다고 하잖아.” 그의 말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인터뷰 도중 쌀과 떡을 가져온 한 아주머니가 깡통에 그것들을 담더니 “에구. 모자라네. 조금만 퍼왔더니 이걸 어쩌나” 한다. 깡통에 쌀이 충분히 차지 않았던 것. 김씨는 태평스럽게 웃으며, 짐 꾸러미에서 떡을 꺼내 깡통을 다 채운다. 그리고 땀을 주르륵 흘리면서도 뻥튀기 기계 앞에 앉는다. “요즘 신문을 보면 ‘내일은 희망이다’라는 글이 하나도 없어. 앞으로 세상을 살 후손들한테도 ‘세상 참 살만한 곳이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세상이 돼야 되는데 말이야.” 그가 차별철폐 걷기대행진에 참여하는 이유다.
그가 하루 온종일 하는 뻥튀기에 ‘빈곤으로 인한 사회의 차별’은 튕겨나가고, ‘내일에 대한 희망’만 튀겨져 나오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