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체불임금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석을 앞두고 장기간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심각한 생계곤란까지 겪고 있다.

노동부는 추석을 앞두고 9월 한 달을 ‘체불임금청산 집중지도기간’으로 설정, 적극 나서기로 했다. 노동부는 지방노동관서에 ‘체불임금청산 기동반’을 편성, 체불임금 청산 독려 및 취약사업장 예방활동을 벌여갈 예정이며, 고의·상습 체불 사업주는 구속수사 등 엄정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도산사업장 퇴직 노동자의 임금을 국가에서 대신 지급하는 체당금 지급심사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앞다퉈 체불임금 해소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지난해에 비해 체불임금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숨 막히는 한가위
 
“첫째 놈 등록금 내야 하는데…”
안산의 한 아파트 현장에서 8명의 팀원과 함께 하스리(건축물의 잘못된 부분 제거작업) 미장일을 하던 김아무개(54)씨는 지난 4월부터 이 곳에서 아예 숙식을 하며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을 공사현장에서 살았다.

그의 첫째 딸은 남들이 4년이면 마치는 대학을 5년 동안 다녔다고 했다. 꼭 가고 싶었던 대학이기에 부모 도움 없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족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한 착한 딸이다. 그 딸이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딸의 마지막 등록금만큼은 직접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올 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 10일까지 5개월간 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김씨는 지난 14일 안산의 Y건설 아파트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원청으로부터 체불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소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간 우리가 지급받지 못한 임금이 7천여만원에 달합니다. 나처럼 자식 등록금을 내야 하는 아버지도 있고, 집에다 생활비를 못 갖다 줘서 빚만 몇백 만원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 돈 받아야 추석 제수용품이라도 마련할 것 아닙니까.” 김씨는 눈앞의 추석을 걱정했다.

Y건설은 지난 8월25일과 31일, 9월10일 밀린 임금을 주겠다며 지급기일을 조금씩 미뤘으나 추석을 앞둔 14일까지도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이유인즉 원청에서 기성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 Y건설 관계자는 “원청에서 기성대금을 입금해 주겠다고 약속한 날을 계속 미루고 있어 우리도 현재 공사에 들어간 돈을 빌려서 막고 있는 중이라 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추석 앞두고 체불임금 급증
 
15일 건설산업연맹(비대위 위원장 양형승)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추석 하루 이틀 전에 체불임금 신고가 집중됐으나 올해는 추석을 보름 정도 앞두고 이 같은 체불임금 발생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주지역에서 발간되는 한 일간지는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체불임금 가운데 44.6%가 건설업체 체불임금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다른 업종에 비해 유독 건설현장의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정책부장은 ‘불법다단계 하도급’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재하도급 금지를 건설산업기본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는 7~8단계의 불법다단계하도급이 성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종합건설업체(원청)는 공사수행을 전문건설(단종)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다시 무면허 등록업자에게 공사를 재하도급 주는 방식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만약 원청이 하청(단종)업체에 기성대금을 주지 않거나 지연시킬 경우, 혹은 단종업체에서 팀장(십장)에게 돈을 안 주거나 단종업체가 부도나는 경우, 또 팀장이 공사를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경우에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현행법상 임금은 노동자들에게 직접 주게 돼 있는데 건설현장의 경우 단종업체와 팀장이 계약을 맺은 후 팀장이 단종업체로부터 받은 임금을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 방식. 팀장이 공사를 포기하거나 도망갈 경우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임금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결국 체불임금이 발생한다.

또 노동부가 극심하게 발생하는 체불임금을 해결하겠다며 야심차게 내세운 ‘임금채권보장제도’ 역시 건설일용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현행 임금채권보장제도에 따르면 체당금은 사업주가 사실상 도산을 해야 지급되는데, 건설업체의 경우 단종업체까지만 보장이 가능해 팀장에게 고용돼 있는 건설일용노동자에게 혜택이 주어질 리는 만무하다.
 

불법적 하도급 철폐 관건
 
최명선 부장은 “문제는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이 극심해지면서 단종업체나 팀장들이 공사계약을 무리할 정도로 ‘저가’로 맺는 관행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이 발생된다”며 “결국 건설현장의 체불임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고리를 끊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이어 최 부장은 “노동부가 추석 전 체불임금 해결을 위해 기동단속반 등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건설현장의 체불임금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발주처, 원청, 단종으로 내려가는 기성대금을 추석 전에 지급할 수 있도록 직접 지도감독 한다면 일정정도 체불임금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희원 서울건설노조 사무국장 또한 “예년에 비해 체불임금 신고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일반적인 체불은 상담을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집단적 체불이 발생할 경우 노조가 직접 결합해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사무국장은 “팀장 중심으로 운영되는 건설현장에서 체불임금이 사라질 수 없다. 특히 올해 같이 현장 공사대금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체불임금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이 철폐되는 것만이 체불임금을 없애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건설현장에서는 체불임금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산업연맹을 비롯해 각 지역건설노조들 역시 체불임금 신고접수를 받고 또 해결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건설일용노동자들은 매년 체불임금으로 인한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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