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섭씨(33세·서울 송파구 마천동·사진)는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이다.
 
뇌병변 장애는 중추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인 장애로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등 대개 일상생활에 저해가 될 정도의 증상을 동반하며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이 따로 정해져 있다. ‘뇌병변 장애 판정 기준’에 따르면 특히 뇌병변 1급은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일상 생활동작을 거의 할 수 없어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중증 장애로 분류돼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앓았다는 이광섭씨는 28살이 되던 1999년까지 집안에만 갇혀 생활 했다고 한다. 당연히 제도교육은 전혀 접할 수 없었다. “장애인인데 공부를 하고 싶다”며 용기를 내 보건복지부에 전화도 걸어봤지만 이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교육부에 알아보라”는 것일 뿐. 이후 교육부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복지회관 등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교육시설을 알아보라”는 무책임한 대답만이 전부였다고 한다. “답답했죠. 내가 왜 장애인으로 태어나 남들 다 받는 교육도 제대로 못 받나… 마음이 많이 언짢았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 이광섭씨.
 
쓰디쓴 첫 외출의 기억 그리고 이동권 투쟁
이런 이씨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될 계기가 찾아왔다. 1999년 어느 날 “함께 심야영화를 보러가자”고 제안한 친구들의 도움에 힘입어 생애 ‘첫 외출’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이날 외출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영화관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몸이 불편하면 집에나 있지 왜 여러 사람 고생시키면서 돌아다니느냐고. 재수 없다고.”

첫 외출의 쓰라린 상처를 가슴에 담아두고 또다시 ‘칩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씨는 어느 날 TV에 나온 ‘이동권연대’의 투쟁 모습을 접하게 됐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죠. 나도 당신들의 투쟁에 동참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이동권연대와 첫 인연을 맺게 된 이씨. 28년 동안 집안에만 갇혀 옥살이 아닌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점점 ‘이동권 쟁취 투쟁’ 의 ‘투사’로 바뀌어갔다. “지하철 철로 점거 농성 들어보셨죠? 저는 철로 점거에 3번 참가했는데, 그것 때문에 집행유예 2년에 실형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지요.”

그가 재판 당시의 에피소드를 하나 털어놓는다. “검사가 저더러 재판 받으러 오라고 연락을 해왔어요. 그래서, 나는 장애인이라 갈 수가 없으니까 재판하려면 당신들이 직접 오라고 했죠. 검사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판사에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직접 찾아 왔더라구요.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판례에도 없는 최초 사례라더군요.”

이동권연대 활동을 통해 장애인 운동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한 복지사의 도움으로 야학에 등록할 수 있었고, 현재는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또 2년 전부터는 ‘장애인 자립운동’에 동참할 생각으로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정립회관에 들어와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정립회관 시설민주화 투쟁에도 결합하고 있다.

이씨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장애인 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현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A가 필요한데 B를 내놓는 격’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장애인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이 생산되려면, 정책 입안 과정에 당연히 장애인의 목소리가 반영돼야죠”라며 현 정부의 엇박자 정책을 비난한다.
 
환상의 체게바라 각도 소유자, 이동권 쟁취 위해 오늘도 나선다
투쟁으로 단련됐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이씨지만, 실제 거리에서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접할 때는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행인들의 무관심과 냉소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단다.

하지만 그가 오늘(15일) 또 거리에 나선다. 오늘은 차별철폐대행진 셋째 날 부문행사인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행사가 있는 날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동권’의 중요성에 대해 열심히 알려낼 것이라고 말한다. “이동할 수 있어야 학교에도 가고, 이동할 수 있어야 직장에도 가고, 이동할 수 있어야 데이트도 하고, 이동할 수 있어야 단풍놀이도 갈 수 있으니까요”라고 이유를 덧붙이는 이광섭씨. 취재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요구하자 ‘환상의 45도 체게바라 각도’를 선보이며 환하게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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