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왔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는데 고생했지요?”

7일 일산 국립암센터 병동. 병상에 누워있던 정종태 재능교육교사노조 전 위원장(40·사진)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반긴다. 이미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바짝 마른 몸인데도 늘 오는 사람을 반기고 챙기는 모습이나 언제나 크고 씩씩하던 그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별로 불편한 데 없어요.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은 한 번 입원하면 5일 동안 종일 주사 맞고 치료 받아서 힘들어하는데 난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주사 맞으면 되는 걸 뭐… 편하게 치료 받는 거지요.”

별로 아프지 않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편한’ 치료가 사실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처럼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할 수가 없어서, 그러기에는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까지 번져 버려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취하고 있는 ‘최후의 방법’이라는 것을 그도 안다.


정종태 위원장. 먹는 것도 없이 자꾸 복수가 차올라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지난달 30일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암 전문 병원인 국립암센터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암센터의 진단결과가 나오던 날인 1일, 홍준표 전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위원장, 이남신 이랜드노조 전 위원장은 정 위원장과 함께 의사로부터 검사결과를 들었다. 의사는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7월에 개발된 신약을 써 보면서 호전되기를 바라거나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했다. 일종의 ‘임상실험을 겸한 치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치료를 위해서는 갖가지 부작용이 서술된 치료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병원 앞 뜰 벤치에 앉은 그들 중 아무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웃음을 지어도 흔들리는 눈망울과 불안정한 표정들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들은 지난 2000년을 전후로 차례로 생겨난 비정규직노조들의 위원장들이다. 어느 노조 하나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한 만큼 수년 동안 고락을 함께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에게 찾아온 너무나 깊은 병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나이, 죽음을 넘나드는 중병을 얻기에는 너무 젊은 겨우 마흔이다.

“다 알고 나니까 속은 시원하네…”라고 먼저 말을 꺼낸 정위원장의 목소리는 당시만 해도 깊이 잠겨 있었다.

수술·방사선 치료 불가…고액 약물치료 유일한 희망

그 후 1주일 정도 사이에 훨씬 밝아진 그는 이제 씩씩하게 병마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능교육이 3년이 넘도록 임단협 갱신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와 노조 간부에 2차례에 걸쳐 12억원이 넘는 가압류를 걸어 놓은 상태에서도 그는 꿋꿋했었다.

재능교육교사노조는 사실 2000년대 비정규직노조 운동의 도화선을 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은 물론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받지 못하고 있던 학습지 교사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그러나 임단협 체결을 위한 2000년 파업 당시만 해도 4,700명이 넘는 조합원 숫자가 지금은 회사가 파업 당시 손해배상을 이유로 청구한 가압류, 회사 쪽의 각종 회유 등 때문에 지금은 수백 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노조를 떠난 사람들 중에는 전임 위원장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99년 12월 노조 설립과 함께 조직국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10월 위원장 임기가 만료될 때 까지 다른 간부들과 함께 재능교육교사노조를 지켰다.

사용자들이 노동자성을 거부하면서 교섭조차 제대로 해 주지 않는 특수고용노조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비정규직노조도 그렇지만 삭발, 단식, 천막농성…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특히 지난 2002년 겨울, 정 위원장은 ‘손배·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0일이 넘는 기간동안 차가운 천막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것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보식을 하거나 할 형편도 아니었거든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정 위원장이 후회 섞인 회고를 한다.

정 위원장의 소식을 들은 노조 조합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도 바로 그 당시 일이다. 조합원들은 “그 힘든 단식 후에도 건강검진은커녕 변변한 보양식 한 번 해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울먹인다. 그러나 어디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너무나 혈기 왕성한 젊은 위원장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손배·가압류 고통은 오히려 그가 임기를 마치고 현업에 복귀하면서부터 더 처절하게 다가왔다. 현장복귀는 했는데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밖에 그에게 ‘교실(수업)’을 주지 않았다. 그것도 급여 절반은 가압류됐다. 그런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그나마 부양할 가족이 없다는 위안으로 견뎌냈던 세월이 노조 활동을 시작하고 벌써 5년이다.

“종태가 사실 끼니도 여러 번 걸렀어요. 원래 잘 안 챙겨 먹기도 하지만 돈이 없기도 했다는 걸 다 아는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홍준표 위원장이나 내가 가끔 불러서 좀 몸에 좋은 걸 사 먹이려고도 해 봤는데… 별로 소용이 없었나봐요…” 이남신 이랜드노조 전 위원장이 정 위원장의 확실한 병명을 듣고 한숨과 함께 한 말이다.

암이 발병하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유전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 환경적인 요인일 수도 있단다. 3년 이상을 끌어온 끝이 보이지 않는 임단협 교섭, 그리고 끼니를 챙길 만한 생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를 지키며 건강까지 지킨다는 것이 더 불가사이한 일인 것만 같다.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따가운 충고’

“아프고 나니까 왜 그렇게 살았나 싶어요. 우리 안에서도 뭔가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요. 활동가들은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일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풍토 말입니다. 죽자사자 매달리지 않으면 운동성이 결여된 것처럼 여기고… 나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일하다가는 병 걸릴 사람 많아요. 활동가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제도적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지만 우리 스스로 동료들의, 자신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이후 노조활동의 인적 토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아요.”

그가 아직은 건강하다고 믿고 있는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그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 부도덕한 사용자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건강 상태의 빨간 불이 확실히 켜져야만 그제서야 조치를 하고 마는 것이 노조활동가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나마 탄탄한 기업의 정규직노조 간부들이야 건강검진이라도 받을 기회가 있겠지만 복지혜택은 물론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는 경우도 흔한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이야 오죽할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건강해야 하는데 병마는 야속하게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는 그들을 먼저 공격한다. ‘홀애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더니 지난 6일 저녁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모인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이 정 위원장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50여개 비정규직노조로 구성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의장 홍영교)와 민주노총 서울본부(본부장 고종환)가 공동으로 ‘재능교육교사노조 전 위원장 정종태 동지 살리기 대책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건설운송노조, 이랜드노조, 시설관리노조, 홍익매점노조 등 산하 비정규직노조 대표들이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대책위원회는 정 위원장의 치료비 모금과 재능교육에 대한 노조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공동행동을 하기로 했다.

2시간 동안 투약 받는 항암 혈관수사 한 번 맞는 비용이 150만원. 그것도 정 위원장은 일종의 신약 효능을 실험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지원이 나와서 그 정도라고 한다. 3개월 치료 기간 동안 최소 1,000만원이 지출되는데, 그나마 의사는 18주 정도 치료를 받고 난 뒤 경과를 지켜봐야 한단다. 만만치 않은 치료비를 그가 감당하기란 어림도 없다.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이 힘이 돼요. 처음에는 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내가 할 일이 많은 이상 좋아질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가 대책위 구성 소식을 듣고 희망을 섞어 말한다.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연애’와 ‘운동’이라고 답하는 정 위원장.

‘비정규 노조운동’에 앞장서느라 몸을 돌보는 규칙적인 운동 해보지 못했을 그는 정말 그는 뜨거운 연애도 해 봐야 할 젊은 활동가다. 그가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의 싸움이 외롭지 않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손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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