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 감독이 ‘사랑 이야기’라고 했던 영화 <연인>은 마치 “이것이 중국 대륙의 호방한 아름다움이다”라고 과시하는 것 같다. 중국의 전폭적인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됐다는 이 영화는 <영웅>에서 색채 실험을 겪고 난 장예모의 화면 구성과 금성무, 유덕화, 장쯔이 이렇게 가장 잘 나가는 홍콩 스타 3인방의 연기로 환상적인 화면 미학을 완성하고 있다.

사실, 장예모의 사랑 ‘이야기’는 별로 탄탄하지 못하다. 한 여자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남자와, 그 여자와 저돌적인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쉽게 말해 무림시대의 남녀 무사들의 삼각관계다. 한국 드라마 <다모>의 중국판 축약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긴 호흡을 가졌던 드라마 <다모>와는 달리 거장의 영상미를 영화의 시공간 속에서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연인들의 애잔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내러티브는 뒷심이 딸린다.

때는 중국 최대 황금기라는 당나라 말기. 온 나라가 반란군에 들끓을 때 자유를 추구하며 민중에게 관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는 비밀조직인 ‘비도문’ 소탕작전이 시작된다. 열흘 안에 비도문의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팽티안성의 관리 리우(유덕화)와 진(금성무).

그들은 홍등가에 맹인 무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메이(장쯔이)를 두목의 딸로 지목하고 검거한 뒤 진에게 다시 구출하게 하는 연극을 꾸민다. 비도문의 은신처를 알아내려는 일종의 함정이지만 도주과정에서 진과 메이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3년 동안 메이를 사랑해 온 리우의 또 다른 과거가 드러나자 그의 질투심이 타오르고…



사랑스러운 인물들, 덜 사랑스러운 이야기

“난 3년 동안 당신만을 바라봤는데 단 3일 만에 그를 사랑하게 되다니…”
메이가 리우를 버리고 진에게 달려가자 리우가 절규하는 한 마디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기보다는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것. 어디서 어떻게 불현듯 닥쳐올지 모르는데 3일이 아니라 3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3년간 지켜온 사랑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남자의 비애 역시도 고전적 분위기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인물들의 매력에 비해 약한 것이 사실. 그러기에는 감독의 욕심이 너무 컸다.

하지만 아름다운 화면 속에서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하는 메이와 진, 심지어 광기어린 사랑의 집착을 보이는 리우 역의 유덕화조차도 사랑스럽다. 원래 무용을 전공했다는 장쯔이는 맹인 무희가 소리만 듣고 북을 치는 ‘신선의 길놀이’라는 춤을 너무나 우아하게 추면서 그야말로 관객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진과 메이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비도문의 두목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현란한 절정의 무공 연출과 함께 스크린을 통해 살아난 중국의 빼어난 절경을 완벽하게 재연한다. ‘죽림대전’이라 칭하는 대나무 숲에서의 관군 정예부대와의 전투가 백미다. 그림 같은 액션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당나라의 테마라고 하는 대나무 숲의 초록빛과 아울러 계절과 함께 울긋불긋 하게 변하는 자연 배경은 그 자체로도 색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약해도 청각적,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다. 이 영화의 엔딩에는 “매염방을 추억하며”라는 자막이 흐른다. 매염방은 원래 이 영화에 두목 역할로 참여했지만 지난해 촬영 중에 운명을 달리했다.

제작진은 배역을 바꾸지 않고 비도문 두목의 얼굴을 삿갓을 깊게 눌러써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극본을 수정해 추모의 뜻을 표했다고.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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