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산별교섭, 산별총파업과 더불어 서울대병원지부의 산별협약 10장 2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우리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이 더욱 더 유명세(?)를 타고있다. 과분할 정도로 많은 분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있다. 하지만 1만 조합원들이 함께 한 산별교섭 성사의 감격과 산별총파업투쟁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 데 10장 2조라는 문제만으로 평가가 협소하게 진행되는 것은 못내 아쉽다.

보건의료노조는 그동안 서울대병원 지부의 문제제기에 대해 공식대응을 자제해왔다. 왜냐하면 서울대병원지부가 파업 중이었고, 이 문제가 올해 산별교섭 평가의 핵심 의제가 아니며 평가기조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가가 진행중인 만큼 가능한 내부 토론을 통해 조직적으로 풀어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런 의지와 무관하게 일부에서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평가를 계속 10장 2조문제로 협소하게 끌고 가면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고 있고, 지난 28일에는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10장 2조 문제점에 대한 전국 토론회’ 라는 긴 이름의 토론회를 통해 쟁점을 외부로 확산시키고 있어 부득이 '균형 있는 평가'를 위해 몇 가지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 대한 총론적인 평가는 <매일노동뉴스 >8월 2일자 필자의 글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 무엇을 남겼나’를 참고하기 바란다.

협소한 10장 2조 논쟁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별협약 10장 2조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분들은 올해 산별교섭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모든 원인을 10장 2조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산별협약 10장 2조가 지부 자율교섭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고, 현장 투쟁의 족쇄이고, 자본의 이중쟁의 금지 요구가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비판하고있다. 과연 그런가?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산별협약이 완벽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대응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이 성공한 교섭인가? 실패한 교섭인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 하는 교섭인 만큼 시행착오와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산별교섭 시대를 앞당기고 노동운동의 발전에 복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울대병원지부와 일부에게 제기하고있는 방식과 내용은 그 관점이 산별적이지 못하고 특히 노동조합의 생명인 민주집중제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다. 내용면에서도 일면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하면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산별운동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해보면,

첫째, 10장 2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다른 합의사항과 따로 떼어놓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주 5일제라는 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인력 충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연월차 수당, 생리휴가 보전등이 일괄 타결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미 근기법이 개악된 힘든 조건과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의 근기법 엄격 적용 방침, 사측의 주6일제 강력 주장 때문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미흡한 조항이 발생했다.

그리고 주5일제 등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이번 산별협약에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특위 구성, 최저임금제 도입, 보건연대기금 조성등 산별적 의제가 다수 합의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가 추구했던 산별교섭의 취지를 살려나가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런 합의를 하나로 묶어 일괄 타결을 조직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즉, 10장 2조 문제는 별도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전체 협약 속에 종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일부 합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것과 10장 2조가 문제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둘째, 10장 2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핵심 논거로 제시하고있는 ‘산별협약은 최저기준이어야 한다’ 는 주장은 서구 산별이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자, 일면적 사례이기 때문에, 대단히 관념적 주장으로 귀착되어 한국 노사관계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산별협약이 반드시 최저기준이어야 한다는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최저기준과 함께 통일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도 산별교섭에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산별협약이 반드시 최저기준이 되어야한다면 올해 교섭에서는 ‘주5일제를 시행한다’는 식 이상의 합의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결국 지부 조직력에 따라 천차만별의 주5일제가 시행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별교섭이 정착되어 근로조건의 편차가 적고, 사회적 안전망이 발달된 유럽 산별노조의 교섭과 단선적으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산별협약의 기준 문제는 각 나라 산별교섭의 역사와 특징을 비교 검토하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취지에 맞는 의제를 개발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결정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반기 현장 간부, 교수, 전문가, 변호사들과 함께 집중적으로 이후 산별협약 체계와 의제를 연구해나갈 예정이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내년 교섭 전까지 최종 기조를 확정할 것이다.

세째, 10장 2조를 둘러싼 쟁점의 핵심은 이번 산별협약이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문제해결 을 산별적으로 할것이냐? 아니면 기업별로 할것이냐?는 점이다. 즉 미흡하다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0장 2조가 지부 단위의 자율교섭 여지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린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은 출발부터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지금 산별교섭을 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지부 자율교섭이라는 것은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연관성 속에서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지부는 마치 지부 교섭의 자율성이 최우선 가치인 것처럼 그것을 기준으로 산별교섭을 바라보고 있다. ‘독소조항’ ‘족쇄’라는 식의 문제제기는 결국 그 뿌리와 철학이 기업별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산별교섭에서 합의한 사항이 일부 미흡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산별교섭을 통해 보완해나가면 되지 왜 지부별로 해결해야되나? 그런 요구의 이면에는 규모와 조직력의 편차를 넘어 함께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힘만으로 더 따겠다는 발상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대병원 중심적 사고이자 여전히 기업별의식이 지배하고있는 결과이다. 산별시대! 대병원은 지부 자율교섭도 중요하지만 산별교섭에 힘을 실으면서 전체 노동자와의 연대와 격차 해소에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자신들의 역할임을 명심해야한다.

네째, 10장 2조 환원론의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10장 2조로 떠넘기고 있다. 병원 사용자가 10장 2조를 내세워 교섭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산별협약의 문제가 아니고 사용자의 불성실교섭이 문제다. 10장 2조가 사측의 이중쟁의 금지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대목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 산별교섭에서 사측의 이중쟁의 금지요구를 끝까지 저지하였고, 산별파업에 이은 지부파업을 조직하면서 사측이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한다면 언제든지 두 번의 파업이 가능함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부교섭 과정에서 10장 2조가 문제가 되지 않은 지부도 많았고, 문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다수 병원들은 우리 해설집과 기준을 가지고 싸워서 상당부분을 유리하게 쟁취했다. 특히 중소병원과 조직력이 취약한 지부는 산별협약이 보호막과 우산역할을 하면서 지부교섭을 원활하게 이끌기도 했다. 산별교섭 이후 지부교섭에 나타나는 양상은 다양하였다. 따라서 서울대병원과 일부 병원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화시켜 지부 교섭이 안 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10장 2조로 돌리는 것은 특수성을 지나치게 보편화시킨 오류이다. 왜 일부 사용자들의 불성실교섭까지도 10장 2조의 문제로 환원시키는지 모르겠다. 이는 산별협약에 불만을 토로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투쟁할 문제이다. 10장 2조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우리 스스로 어렵게 쟁취한 성과를 지키지 못하고 사측의 논리에 휘말려 우리 성과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있다.

다섯째, 10장 2조를 둘러싼 문제제기는 산별교섭 논의를 생산적으로 풍부하게 이끌지 못하고 너무 협소화시키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산별교섭인 만큼 성과와 함께 시행착오도 많았고, 나아가 산별교섭 정착을 위해 풀어가야 할 수많은 과제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계속적으로 산별교섭이라는 큰 숲을 보지 못하고 10장 2조 라는 작은 나무를 놓고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를 몰아가고 있다. 성과와 한계, 그리고 과제를 보다 균형감 있게 접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지혜가 아쉽다.

서울대병원지부가 이번 산별협약이 노동계급의 요구를 자본에 반납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른 다수의 대병원들은 산별교섭이 아닌 지부교섭을 했다면 이 정도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라며 의미있는 합의라고 평가하고 있고,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과 조직이 어려운 지부에서는 이번 산별협약이 큰 힘이 되었다고 평가하고있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산별교섭과 함께 한 지부교섭이 산별 파업의 큰 힘으로 성과적으로 타결된 것도 한번쯤 짚어봐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산별노조와 민주집중제

특히 지난 28일 진행된 토론회는 방식, 주제, 참가 주체 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방식의 문제이다. 산별교섭에서 발생한 문제이면 산별노조 전체 차원에서 산별적으로 풀어가야지 지부 차원에서 별도의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이것은 기업별 방식이다. 서울대병원지부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라는 단위노조가 아니라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 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특히 올해가 산별교섭 원년인 만큼 모든 것을 산별적 과정을 통해 학습효과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느리더라도 산별적으로 한 걸음 씩 전진해야한다. 그리고 올해 산별교섭의 문제점들이 이런 식의 일회성 토론과 상호 입장 확인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특히 내부 평가가 진행중인데 문제를 안에서 먼저 풀어나가려고 하기보다 밖으로 먼저 쟁점화 시키면서 입장을 정당화시키려는 태도는 내부의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있다.

둘째는 토론회 주제이다. 이번 토론회 제목이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10장 2조 문제점에 대한 전국 토론회’ 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10장 2조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올해 산별교섭 평가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 보다 균형감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셋째는 토론회 참가 단위의 문제이다. 아직 산별 중앙차원에서 조직적 평가가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의 한 개별 지부가 주최하는 이런 식의 토론회에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이 공식 직함을 걸고 참가한 것은 참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오히려 문제를 우리 내부적으로 잘 풀도록 도와주는 것이 같은 길을 가는 조직으로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제기 하는 과정에서 서울대병원지부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시 ‘조건부 탈퇴를 결의’ 한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누구나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산별노조를 탈퇴하겠다는 것은 같이 토론하고도 조직적 최종 결정이 자신들의 주장과 맞지 않을 때 다수결에 의한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판을 깨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끝으로 올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 대해 좀 더 균형감 있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이를 계기로 다소 침체되어있던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운동을 재 점화시키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과정 하나 하나가 산별운동의 소중한 역사가 될 것이고, 따라서 모든 과정을 ‘성장통’으로 이해하고 싶다. 이런 토론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왜 산별교섭을 하려고 했는지? 그 문제의식과 출발점을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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