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관계의 새 틀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여당이 갑작스레 노사정 대타협을 들고 나왔다. 그 전말은 이렇다. 지난 8월17일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원회 의장이 고위 당직자회의에서 “네덜란드식 노사정대타협”을 주창하자 열린우리당이 23일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을 위해 노사정대타협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화답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이해찬 국무총리와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노사정의 새로운 대타협모델을 마련한다는데 합의하였고 25일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두 당의 원내대표가 만나 경제회생을 위한 노사정협의체구성과 정기국회 민생입법 처리대책 등을 논의하였다.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노사정대타협추진위원장에 임채정의원, 간사에 이계안 의원(3정조위원장), 이목희 의원(5정조위원장)을 임명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채비를 갗추었다. 사사건건 으르렁대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모처럼 의기투합하여 나온 작품이라는 점,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논의가 진전되었다는 점이 주목되지만 그에 대한 노동쪽의 우려는 매우 크다.

기득권 달래려는 보수 정치권의 속내

노동쪽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담하다. 한국노총은 “임금억제 파업자제 등의 내용을 담은 대타협은 의미가 없고--알맹이가 빠진 대타협은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고 이용득 위원장은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고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민주노총은 직권중재, 손배 가압류 등 노동탄압과 비정규직 차별 등 열악한 노동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정치나 똑바로 하라”고 내질렀다. 한편 한나라당이 협조를 구한다고 했던 민주노동당 역시 강하게 비판했다. 그 이유는 “양당이 말하는 네덜f란드식 타협은 노동계의 양보만 요구하는 것이어서 노사문제 해결의 진지한 해법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이런 반응은 여야가 구상하는 노사정대타협 추진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보통수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80년대 네덜란드식 노사정 대타협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네덜란드식이란 “노동자는 노동조건 유연화나 임금에서 양보하여 그 재원을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해소에 쓰도록 하고 정부는 세금을 깎아줘서 사용자가 일자리를 제공하는 메카니즘”이다. 한마디로 노동자가 양보하는 메카니즘을 만들어 경제위기를 탈출하자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주장도 네덜란드식이라는 표현만 없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회복, 투자 분위기, 일자리 창출이라는 논리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노동자 경영참가를 보장하며 사회보장을 충실히 시행하고 있는 사실은 배제하고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에 의한 네덜란드식 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야 원래 자본쪽이니 당연한 구상이지만 1년 전에 네덜란드식을 격렬하게 비난했던 것에 견주어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네덜란드 모델을 내놓자 이한구 의원은 노조의 경영참여권을 주장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노무현 정부는 친노동이 아니라 아예 친노조에 가깝고 강성노조, 노동귀족만 만들고 있다고 맹비난했었다. 또한 진보와 개혁을 자처하며 노동쪽에도 상당한 지지기반이 있다고 자부하는 열린우리당이 수구 보수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선뜻 동조하고 나선 것은 또 무엇인가? 더욱이 이한구 의원의 발언은 당내에서조차 조율을 거치지 않는 개인의 주장이라는데도 열린우리당은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도대체 무엇이 두 당의 이해를 맞아 떨어지게 한 것인가? 혹시 두 당 모두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으로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관점을 공유한 결과일 수도 있고 두 당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조건의 악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정략 앞세운 국면전환 카드인가

먼저 한나라당은 전에 없이 코너에 몰려 있다. 지지율에 변화가 없어 초조한 마당에 과거사규명 요구에 봉착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에 표적이 모아지면서 당 내부는 격전장이 되고 있고 두 차례 선거 이후 여전히 여당 발목잡기에 골몰한데다가 지역감정에 편승하여 얼굴만 팔고 다니지 정책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당의 기반인 기득권층의 이해를 반영해주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취약점이었다. 열린우리당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라크파병 강행과 수도 이전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고 경기침체는 끝가는 줄 모르게 심각하다. 과거사 정리와 개혁입법에 힘을 쏟고 있다지만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고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이다. 두 당 모두 무엇인가 국면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다.

물론 여당의 노사정대타협추진위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목희 의원의 얘기처럼 고용관련 경영참여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간히 삐져나오는 정부 고위층의 발언이 노동쪽의 신경을 거듭 건드리다 못해 회의의 눈초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해찬 총리가 “6,500개 노조 중에서 20-30개에 불과한 악성쟁의 사례가 외국투자가나 가업들의 인식오류를 발생시키는 측면이 있다”라든가 “대기업노조의 쟁의로 중소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발언,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서 경제가 어려울 때 노조가 앞장서서 노동시간을 늘리고 자발적으로 임금을 삭감한 예들이 있다”고 한 이부영의장의 발언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 여당의 관점에 대한 노동계의 시각은 여전히 비판적이다.

민주노총이 지적한 것처럼 지금 노사정간에는 “많은 아픔과 고통, 불신과 갈등을 넘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노사정관계의 형성을 위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오랫동안 노사정 관계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던 민주노총은 직권중재와 대량징계를 노동탄압으로 규정하면서도 ‘사회적 교섭’ 논의를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이 경제회복을 위한 노동의 희생으로 비쳐지기 십상인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는 것은 노사정관계의 새틀짜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판을 깰 위험성이 더 커 보인다.

굳이 여당이 노사정 새틀짜기를 돕고자 한다면 노사정간에 합의 또는 협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비민주적이고 노동탄압의 빌미를 제공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일일 것이다. 민생문제의 핵심은 노동자 문제라는 관점에서 사회복지나 사회보장 확충에 진력하는 것도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집권세력의 노사정 대타협 추진이 자칫 ‘동냥도 안주면서 쪽박마저 깨는 일’이 안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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