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공업지역인 오사카에서 태어나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 기름때 절은 작업복의 노동자들을 보고 자란 소년 와키다 시게루(脇田 滋)가 쉰 중반의 나이에 한국에 왔다.

노동자를 위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은 자연 법학공부를 하게끔 이끌었고, 그는 현재 교토 류코쿠대에서 사회보장법과 노동법을 강의하면서 한국의 민변과 비슷한 민주법률협회의 파견노동연구회, 명예근로감독관과 비슷한 노동기준옴부즈맨의 오사카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96년 8월부터 ‘파견노동자를 위한 웹사이트(http://www.asahi-net.or.jp/~RB1S-WKT/)'를 운영하면서 파견노동자들의 상담을 받아 일일이 전화, 이메일로 답신을 해 주는 등 파견노동의 고충상담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23일부터 3주간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비정규노동자 동향과 비정규보호입법 과정 등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본격적인 연수는 내년 2~3월이고 이번은 사전 답사이자 어학연수 차원. 임시 연구공간으로 도움을 받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지난 25일 그를 만났다.

파견제도는 “나쁜 지혜의 결집”

일본에서 파견법이 제정된 지난 85년부터 20년 가까이 파견노동 연구에 집중해 온 그가 비정규, 특히 파견노동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뭘까.

“85년 당시 나카소네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정치권이 국철노조에 대해 국가 차원의 부당노동행위를 하면서 파견법도 함께 도입했다.” 그는 ‘파견’이 사용자책임을 흔들어버림으로써 상용고용, 간접고용금지, 평등고용이라는 노동법의 대원칙을 훼손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단결권보장고용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노조는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무원들의 조직이다. 그런데 파견노동자들은 이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기존의 노조들이 파견철폐 등에 나서주면 좋겠는데, 이미 혜택을 받은 노조에 그런 마인드는 없다. 비정규직을 방치하는 노조운동은 그들이 이미 쟁취한 것도 훼손시킬 것이다. 결국 파견법 제정은 노동자 보호수준 약화는 물론 기존의 노조조차 싸우지 않는 노조로 전락시키고 있다.”

실제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일본의 쟁의행위 건수는 657건에서 304건으로, 노동손실일수는 11만6,003일에서 1만2,262일로 크게 줄었다. “원래 노조는 약자를 위해 싸우는 조직인데, 세계 최저수준의 노동자 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 노조들은 싸우지 않는다. ‘나쁜 지혜의 결집’인 파견제도가 노조 자체도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 노동자들은 ‘과로사예비군’

그는 노조운동이 쇠락하는 가운데 ‘죽음의 문 앞’에 이르는 노동자 수가 늘어 무엇보다 우려가 크다. 2003년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는 657만명이다. 일본 전체 취업자 수가 당시 5,373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법정 노동시간(주 40시간)보다 20시간이나 많이 일을 하는 일본 노동자가 전체의 10%도 넘는 셈이다. 그는 이들을 '과로사예비군‘이라 부른다.

파견노동의 확산속도도 무시무시하다. 현재 한국의 파견법처럼 파견허용업종을 명기(포지티브)하던 방식에서 금지업종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허용(네거티브)하는 방식으로 법이 개정된 99년 이후 4년 만에 100만명이던 파견노동자는 200만명으로 2배 늘었다.

“지금 노동기준옴부즈만으로 내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23세 한 남성노동자의 사망사건이다. 그는 니콘에서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으로 일을 하다 정규직보다 심한 업무부담, 스트레스, 장시간노동 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했다. 파견 등 비정규직 확산과 이를 저지하지 못한 일본 노조운동의 한계가 빚어낸 것이 바로 과로사나 과로로 인한 자살인 것이다.”

“파견법은 당연 폐지해야”

파견법에 대한 그의 입장은 분명하다. “불법파견을 없애고 파견허용 업종을 막는 운동도 필요하지만 파견법은 폐지돼야 한다. 내가 강하게 폐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일본의 노동계나 학계가 그 심각성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입장이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98년 파견법이 한국에서도 제정됐는데, 일본 노동계나 학계 책임이 크다. 일본 파견법이 나쁘다는 걸 더 큰 소리로 외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젠 한국에서 직접 그 얘길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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