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론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논의에 앞서 안도의 한숨 한 가지. 지난 8월17일치 이 고정란에서 밝혔던 근심거리의 하나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겨레> 8월23일치를 보면,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는 조건의 하나인 ‘외국인투자등록제’ 폐지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경기침체 속의 물가 상승’이란 뜻을 지닌 이 말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 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상승)의 합성어이다.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처음 등장했다는 게 통설이다. 실업은 느는데 석유가격이 폭등하자 물건 가격을 내리고 싶어도 오히려 석유가격 인상분만큼 물건 가격이 상승하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석유가격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런 현상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경기가 침체되면 실업자가 늘어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 물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물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하락하는 관계에 있다고 봤다.

실업률과 물가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이 바로 ‘필립스 곡선’이다. 이 필립스 곡선은 물가를 잡는 정책을 펴자니(이를테면 금리 인상) 경기가 침체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시행하자니(이를테면 금리 인하나 확대 재정정책) 물가가 오른다는 상충관계를 나타낸다.

소비가 주는데도 물가는 오른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실상은 이런 통념을 부정한다.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기 상승으로 실업률이 감소하면 물가가 상승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

1890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경제에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는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달리 말해, 경기 침체는 언제나 물가 상승을 동반했다는 얘기다.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이런 경험적 관찰은 스태그플레이션 등장 이후 경제정책의 목표에서 물가안정의 뒷전으로 밀려난 완전고용의 중요성을 복권시키는 이론적 논의로 이어진다.

‘최소실업인플레이션’(minimum unemployment rate of inflation; MURI)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는 고용이 늘어나는 대신 일정 수준 이내의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압박을 감수하는 반면, 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실질임금 하락에 저항하는데 바로 이 수준의 물가가 바로 최소실업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완전고용을 간과하지 않는 물가안정 정책, 달리 말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의 병행을 위한 대안적인 이론화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통화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에드먼트 펠프스가 이론화시킨 자연실업률(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고 있을 때 존재하는 실업률) 이론, ‘실업률이 일정한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급속히 상승한다’는 네오케인지언들의 이른바 ‘물가안정실업률’(나이루) 이론에 대한 반박이다.

독점자본의 승자 독식주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라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문화일보 8월27일치 14면 머릿기사 ‘중기 원료값 급등에 반발’을 보자.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에 중조 제조업체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 … 계속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최근 원유가 급등으로 석유화학 제품, 철강재, 비철금속 등 제조업 원료 가격이 폭등,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심각한 수준 … 문제는 제품 원료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은 국제가격 상승에 따라 원료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지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경기 악화 때문에 가격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부 투자분석가들의 분석들도 시사적이다. “국내경제에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함께 나타나는 더블플레이션(double-flation)이 나타날 소지가 더 크다 …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과 과잉생산 및 가격파괴 영향으로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부문이 공존하는 아주 특이한 현상 … 더블플레이션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과 최고의 주가를 누릴 것이나 그렇지 못한 기업은 줄줄이 무너지는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물가상승이 아닌 부문별로 차등적인 물가상승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차등적 물가상승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재분배를 낳는다.

노동에서 자본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부가 재분배되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지배적 자본분파의 축적전략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유업체들의 폭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언제 어디서나 재분배적 현상”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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