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유명세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 총선 이후 당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과연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을 아는 당원은 얼마나 될까.

총선전 비례대표 후보로 당내경선에 나섰던 이선근은 일반명부 11명의 후보 중에 9위를 차지했다. 그때 그가 얻은 표는 ‘겨우’ 457표.

하지만 당에 국회의원이 한명도 없었던 시절, 민주노동당이 자랑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위해 거리를 누빈 사람,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 운동, 이자제한법제정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대중들을 만났던 사람이 그였다. 특정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불장군’처럼 혼자 뚜벅뚜벅 당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의 경제관련 논평을 도맡아 하는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수장인데 정작 그에게 쏠리는 관심은 별로 없다. 그가 낸 논평이 당게시판에서 그 흔한 ‘논쟁’ 한번 겪지 않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국민을 향한, 보수정당을 향한 제3당의 경제관련 논평을 그만큼 무난히 소화해 내고 있다고? 아니면 오히려 일반 대중들보다 경제정책에는 더 무관심한 당풍토? 아니면 둘다일까.

노동자가 ‘노동자’로만 생각하면 고립 자초

이선근은 매일노동뉴스의 주 독자인 ‘노동자’들에게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민생정책은 서민을 위한겁니다. 서민은 노동자죠. 그런데 노동자는 자신을 서민의 이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서민이라고 불리기보다 노동자라고 불리는 걸 원하죠. 자신의 계급 이외에 다른 곳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걸 싫어합니다. 신용불량자로 불리고, 서민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노동자라고만 생각합니다.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

“특히 노동조합 간부들이 더한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자신을 신용불량자로 인정해 버리면 자신의 정치적 리더쉽이 깨지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장기파업에 들어가면 노동자 모두가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그런데 신용불량자를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2004년 신용불량자는 노동자의 다른 이름 일 수도 있다는 것.

“부동산 문제는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땅위에 안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거생활, 공장생활 모두가 땅에서 이뤄집니다. 땅덩어리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살 수 있다면, 땅을 근거로 사는 사람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죠.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바로 노동자입니다. 정규직이야 자기 집을 가지고 있어서 집값 올라가면 좋아하겠지만, 비정규직은 어떻겠습니까.”

이선근은 노동자가 서민의 이름으로 서민을 리드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동자가 서민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서민이 바로 노동자고 노동자가 바로 서민이니까요. 서민들의 이해관계와 함께 하는 것, 그건 노동운동의 영역과 설득력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에 서운함을 나타냈다.

“당초기에는 민주노총과의 정례협의회에 갔습니다. 제가 상집이기 때문에 정례협의회 멤버였던거죠. 그런데 어느순간 부르지 않더군요. 정례협의회도 많지 않았지만, 있어도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한데 안타까울 수밖에요.”

민주노총과 무슨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조합원 교육.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신용불량자문제에 대한 교육, “글쎄 가능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예의 격앙된 이선근 목소리.

“옛날에요, 그러니까 2000년인가, 딱 한번 민주노총과 사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왜 그때 검찰이 민주노총이 집회를 많이 하니까, 상인들이 집회 주최측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 그때가 기억난다. 2000년이 아니라 2001년 7월이었다. 검찰이 시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 전국검찰청에 '불법집단행동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소송을 지원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종로3가에서 명동성당까지의 잦은 행진으로 영업에 피해를 입은 상인들로 하여금 민주노총을 압박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때 민주노총에 사업제안을 했죠. 그런 손해배상소송 들어오면 피곤할테니 상가임대차보호법 유인물 함께 뿌리자구요. 당하고 민주노총하고 함께 뿌렸죠. 반응이요. 좋았습니다.”

기자 역시 민주노동당 당기관지 <진보정치> 기자로서 당시 이를 취재한 적이 있다.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면서 상가마다 들어가서 상가임대차보호법 유인물을 뿌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반응이 좋아서 민주노총에서 추가로 유인물 찍겠다고 필름까지 가져갔죠. 그리곤 끝이에요. 그 다음엔 한번도 사업을 함께 하지 못했네요.”

이 정도면 아마 중앙당의 여러부서 중 가장 민주노총과 사업을 하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당내 정파, 남 공격할 줄만 알아

그런데 요즘 이선근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민을 리드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임대아파트 문제로 여러지역을 다니는데, 각지역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이 결합하고 있어요. 옛날 간부들도 있고 현직도 있죠. 군산에서도, 천안에서도, 대전에서도 그랬습니다. 리더를 했던 사람들은 틀리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나서서 지역주민 조직하는 데 기가막힙니다. 노동조합했던 사람들은 지역을 휘어잡을 수 있어요.”

이선근은 노동조합 간부들도 운동을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대중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대중들과 만나는 걸 두려워하면 안되요. 대중과 자기를 분리하려고 하는 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노동자가 선도적인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면 망하는 겁니다. 현실은 자기 입장에서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아직까지 이선근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는 민주노총 같은 조직이 아니라, 신용불량자 클럽, 전국임대아파트입주자 대표자회의, 그리고 영세상인들이다.

그는 신용불량자클럽 자랑(?)을 이렇게 했다.

“신용불량자 클럽은 하루에 3, 4천명이 들어와요. 오프모임도 활발하죠. 서울, 경기 등 광역별로 모임이 있어요. 지난번에는 팝업창에 민주노동당 바로가기를 띄울 정도로 당을 좋아합니다.”

신용불량자들이 있는 곳, 거기에 이선근이 있다. ‘운동권 영역’이 아니었던 곳에서 이선근은 당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집세고, 혼자 일하고, 할말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독자 주위에 한명씩 있다면 그 스타일이 바로 이선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그는 당내 정파나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정파적인 입장이 정책으로 반영이 안되는 것 같아요. 정책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거죠. 자신들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만 공격할 줄 알았지, 자신들의 신념을 정책으로 만드는건 굉장히 취약해 보입니다.“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파에 대해 이선근이 끝으로 던진 ‘쓴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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