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

“×× 교장선생님”
“네”
지난 19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노동교육원 강의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든 학생 60여명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네~”하고 대답하며 수료증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전국에서 올라온 초·중·고교 교장, 교감선생님들이다. 가르치는데 익숙한 이들이 딱딱한 양복대신 가벼운 옷차림으로 2박3일 동안 책상에 앉아 교육을 받았다.

50년 이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고 가르쳐 본 적 없는 노동교육. 이들의 양손에는 ‘노동법’, ‘선진 교원 노사관계’ 등의 제목이 달린 책들이 가득 들려 있다.

한국노동교육원(원장 안종근)은 지난 2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씩, 총 8차례 ‘교장단 교육’을 실시했다. 각 기수마다 60여명 가량씩 수업을 들었으니, 480여명의 교장, 교감들이 노동교육을 받은 것이다. 교육은 △교원 노사관계의 특징 및 쟁점 분석 △노동법과 노사관계의 이해 △변화관리와 리더십 △학교운영 및 노사관계 사례발표 △교원 노동법과 부당노동행위 및 성희롱 예방 △선진 교원 노사관계 사례와 시사점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권위주의, 보수주의 등으로 상징되는 교장, 교감들이 이들과 쉽사리 연관짓기 힘든 노동교육을 어떤 마음으로 받았을까.



학교 노동교육의 ‘힘’

노동교육원이 이번에 실시한 교장단 교육은 ‘학교 노동교육’의 한 부분이다.

지난해 말 노동교육원법 개정으로 노동교육원의 교육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됐고 교육 목적 또한 ‘노동의 제반문제’로 확대되면서 교육원이 명실상부한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되는 단초를 마련했다. 그 첫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 바로 학교 노동교육이다.

“노동문제는 민감한 것인만큼 한꺼번에 욕심을 낼 수 없다. 우선 올해는 학교 노동교육을 제도화하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노동교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취업담당 교사, 일반교사뿐만 아니라 교장, 교감, 장학사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노동이 무엇인지, 또한 노동은 천한 것이 아니라는 것, 노동과 자본의 관계, 노조가 무엇인지, 필요한 파업은 해야 한다, 는 등의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가르칠 것이다.”

법 개정 직후 안종근 노동교육원 원장이 밝힌 올해 사업계획 중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노동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았던 노사관계. 아직도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 등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부각되는 현실. 법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의식과 관행’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다.

‘의식과 관행’을 조금씩 변화시킬 토대를 마련할 학교 노동교육의 첫 출발은 어려웠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선 학생들이 노동과 관련해 알 수 있는 주요 통로 역할을 하는 중·고교 사회과목 교과서 내용 가운데 표현이 잘못됐거나 왜곡의 소지가 있는 부분들이 대폭 수정된다. 노동교육원의 요청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25곳을 다음 교과 개편 때 수정키로 했다.

이와 함께 학교의 취업담당 교사들에게 노동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금은 교장단까지 교육이 확대된 것이다. 교장단 교육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상태 노동교육원 대외협력팀장은 “교원노조와 교육부의 중앙교섭, 각 교육청과 교원노조 지부의 교섭에서 협약안이 체결되면 실질적으로 실행되는 곳은 학교 현장”이라며 “학교의 ‘수장’이 교장인 만큼, 이들이 노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노사관계, 나아가 학교 내 노동교육 등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교육원은 이번 교장단 교육을 시작으로 학교 노동교육에 ‘큰 줄기’를 만들 계획이다. 여 팀장은 “사범대에 노동교육을 이수과목으로 해 줄 것과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상시적 노동교육이 가능하도록 교육부에 정책 건의를 할 예정”이라며 “필요에 따라서는 학생들에게도 수능 직후 등 시간을 내 최소한 노동법은 교육을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르면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적 편견이 앞서게 된다. 또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찾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노동법, 노동의 가치, 노사관계,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이 갖고 있는 의미 등 최소한의 것들만이라도 제대로 교육이 된다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이것이 노동교육원의 ‘학교 노동교육’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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