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만의 폭염 속에 진행된 임단협 교섭이 큰 고비를 넘기고 있다. 혹자는 서울지하철노조와 엘지정유노조의 예를 들어 노동의 참패라고 결론짓는가 하면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성공을 두고 노사관계 발전의 한 조짐으로 평가하는 쪽도 있다. 노사정 3자 모두의 실패작이라는 지적도 있다. 노사분규의 양과 질이 모두 나빠져 노사관계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이다.

이들 논의가 어떠하든 몇몇 노조에는 대량징계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엘지정유노조에 대해 회사는 2명 구속, 9명 수배, 65명 고소 고발, 71명 징계위원회 회부라는 무서운 대가를 요구한다. 서울지하철공사는 노조 전임자들에 대해 파면 13명, 해임 8명, 정직 4명의 징계조치를 내리고 당국에 고소 고발하였다. 지회장 43명은 직위해제되었고 조합원 및 대의원 66명은 감사실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구조조정 때문에 50여일의 쟁의가 벌어진 코오롱에서는 노조위원장 등 15명이 고소 고발 당하고 11명은 해고, 2명은 30일 정직에 4명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회사는 노조원 41명에 대해 10억원의 손배 가압류를 신청하였고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직장폐쇄를 단행하겠다고 한다. 이 밖에 이들 노조원은 모두 무노동 무임금을 각오해야 한다. 올해도 파업-구속 징계의 악순환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노조는 희생된 ‘동지’의 구출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야 하고 회사와 정부는 상당 기간 머리를 싸매게 될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노사관계가 뒤뚱거릴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준비 없이 밀어붙인 주5일제

올해 노동쟁의의 격화는 이미 작년 9월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예고되어 있었다. 주5일제로 표현된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격전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올 7월부터 개정 근기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휴일 휴가제도의 변화에 따라 임금보전과 인력, 근무형태의 조정은 필연이었다. 그러나 경총은 지침을 통해 근기법 수준 고수를 일찌감치 기본방침으로 정했다. 많은 사용자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이 지침에 충실했다. 그리고 올 단체교섭에 임했고 한사코 근기법대로의 개정을 교섭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정부 역시 노동시간 단축의 의의와 성과를 선전하는데 주력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독려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공기업의 노동시간 단축 지침을 통해 근기법 개정에 따르는 휴일 휴가제도의 변경을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근기법대로 고치고 보자는 사용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었다.

노조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긴장했지만 노동법이 노조의 목적으로 정한 대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위해 단체협약을 고수하면 된다는 자세로 대응했다. 교섭은 대부분 난항을 거듭하였고 경제침체 등 외부 악조건에 밀린 노조는 바뀐 제도는 인정하되 기득권은 임금으로 보상받는 편법이 속출하였다. 이를 두고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이용해 돈만 밝힌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고 기존 단체협약을 고수하려는 노조는 단체행동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투쟁에 나선 노조는 몰매를 맞았다. 자본은 노조를 몰염치한 ‘노동귀족’으로 몰았고 수구언론은 노조 요구의 속내는 거두절미하고 자본의 주장을 확대하여 보도하였다. 엘지정유 노조원과 서울지하철노조원의 고액연봉을 회사 자료대로 퍼뜨려 장기 불황 속에 생계 위협선에서 헤매는 실직자, 저임금 노동자들을 자극 선동하였다. 수구언론은 고액 임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토록 높은 임금을 받고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였다.

정유회사가 상장을 거부하면서 한해 매출액이 11조 7천억이라는 사실, 외국으로 수천억씩 빼내가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증가는 게을리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줄도 알리지 않았다. 1년 내내 온종일 땅 밑 운행과 갈수록 높아지는 노동강도로 겪는 지하철 노동자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하고 비싼 세금으로 임금만 올리려든다고 몰아부쳤다.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하철 건설비까지 회계에 넣어 나타나는 적자타령은 관심 밖이었다. 직권중재를 기대하며 교섭을 게을리 하고 노사분규 증가에 초조해진 정부의 직권중재에 대한 유혹을 이용하려는 사용자측의 교묘한 전술은 노조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 지적해도 귀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자본과 수구언론의 논리는 그들의 평소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경쟁,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돈 많이 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높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경영자들은 1년에 수십억 수백억을 받아도 괜찮고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수 진작을 위해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 고임금이나 임금인상을 비난하는 모순을 자본과 언론은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이미 작년 현대자동차 쟁의 때 경험했지만 자본과 보수 논객들에게 노동자는 어떤 경우든 고임금을 받아서는 안되는 존재인 것이다.

징계만이 능사 아니다

사용자들은 ‘법대로’를 내세우며 중징계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야만 ‘싸움꾼 노조의 나쁜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징계 남발이 능사는 아니다. 과거 악법도 법이란 논리로 노동자 저항에 대해 숱한 형벌을 가했지만 그것으로 노사관계가 발전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 앙금을 씻어내느라 오래 오래 갈등과 진통을 겪었던 예가 훨씬 많다.

노사 당사자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법대로의 징계가 노동쟁의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닌 경우 사용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제도 면에서 보더라도 직권중재 자체가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요소로 지적된 지 오래이며 참여정부도 그 문제점을 인정하여 개선방침을 밝히고 있는 판국이다. 이런 점에서 노조에 대한 대량의 징계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며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최소화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조쪽은 자본과 권력이 노동운동을 탄압한다고 분노하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는 길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시장주의 성장논리가 득세하고 수구 보수언론이 여론조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조의 모든 투쟁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노동운동의 안팎에 노조의 위상과 전망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실조건 아래에서 투쟁의 전략 목표는 올바로 세웠는지, 투쟁의 목표와 수단을 잘 구분하여 투쟁전술을 제대로 운용하였는지, 상대를 너무 가벼이 보거나 상황변화와 주체역량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아닌지 되짚어 보고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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