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동아일보> 칼럼에 썼다. “수출이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평등원리를 정책에 주입하는 좌파 정권 때문이고 생산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좌파 정권을 견제하려는 우파 세력 때문이라는 식의 논조가 세상을 지배한다면 보통 학자들은 죄다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라고. 문제 삼고 싶은 일부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진정성’에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개탄하는, 한국경제에 대한 바로 그런 진단을 퍼뜨린 장본인이 ‘조중동’이라는 사실을 이 교수가 알고 있는지, 비록 알고 있으면서도 ‘계몽’ 차원에서 ‘조중동’에 글을 썼는지는 몹시 궁금해진다. 굳이 ‘안티~’를 하는 이들은 아니지만, ‘조중동’의 경제 관련 보도와 칼럼을 역겨워서 더 이상 읽지 않는다는, 내가 알고 있는 여러 명의 경제학 교수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 = 미 공군의 전투기 재배치

그런데 최근 거대한 지정학적 위험과 함께, 자칫하면 한국경제가 ‘무장해제’ 당할 수 있는 사건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모두 오는 9월에 벌어질 사건들이다. 하나는 미국 부시 정권에 의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다. 지난 6월 말 미국 공군이 F-117 스텔스 전폭기 10여대를 한반도에 배치해 지형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데 이어, 9월에는 알래스카 공군기지에 있는 F-15E 전폭기 20여대를 한반도에 이동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북한의 전략 목표물에 대한 ‘정밀 공격’(서지컬 스트라이크)을 위해서다. 결국,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북한 공격 위협으로 인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최고조에 이를 게 분명한 셈이다. 국내 헌법을 무시하는 무리한 이라크 추가파병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권은 ‘일방적 군사적 모험주의’라는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3월26일 영국 FTSE인터내셔널 그룹의 자회사인 ‘FTSE 아시아태평양’의 폴 호프 사장은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방문해 “한국의 FTSE 선진국 지수 편입 여부를 오는 9월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 런런증권거래소(LSE)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FTSE그룹은, 유럽계 및 전 세계 투자가들의 투자 판단 잣대로 이용되는 FTSE지수를 선진시장, 준선진시장, 신흥시장으로 나누어 발표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대만 등과 함께 준선진시장에 포함돼 있다.

한국 증시를 무장해제하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게다가, 선진국 지수 편입의 대가가 한국경제의 ‘무장해제’나 마찬가지일 만큼 값비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올 2월부터 흘러나온 정보들을 종합하면, FTSE그룹은 선진국 지수 편입의 대가로 한국 정부에 5가지 정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호프 사장이 직접 거론한 내용은 2개다. 공매도 허용과 외국인 통합계좌 완화가 그것이다. 공매도는 2001년 9·11테러 직후 알카에다의 수괴인 오사마 빈라덴이 사용해 유명해진 금융거래 기법이다.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주식을 팔아치우고,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실제로 사들여 공매도한 물량을 결제하고 차익을 챙기는 수법이다. 한국의 경우, 공매도는 지난 2000년 우풍상호신용금고의 공매도 사태 이후 사실상 금지돼 있다.

외국인 통합계좌와 관련한 FTSE그룹의 요구는, 사실상 외국인에 대한 무제한의 자본이동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 금융감독당국은 외국인이 자본을 국내에 들여올 경우 반드시 계정을 개설하도록 하고 있다. 유사시 금융시장 안정을 꾀하기 위한 모니터링(감시)을 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외국인이 국내에서 빌릴 수 있는 원화의 한도를 없애라는 것도 FTSE그룹의 요구 목록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현재 외국인의 원화 차입한도는 1인당 10억원, 증권대차(일정기간 동안 유가증권을 빌리는 것)는 1인당 50억원이며 모두 한국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FTSE그룹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국경제는 유사시 자본통제도 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 재정경제부는 2002년 초 비거주자가 무제한으로 원화를 빌릴 수 있게 하는 것을 포함하는 3단계 외환자유화 일정을 애초 2011년에서 2007년으로 앞당기겠다고 선언하는 만용을 부렸다. 오는 9월이 두려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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