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중국 지방정부인 헤이허(黑河)시가 발행하는 <헤이허일보>가 “동북공정은 후진타오 동지가 지시하고 승인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민간 학술차원의 연구 프로젝트’일 뿐이라며 이 문제를 ‘음험하게’ 비껴나가려던 중국 정부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고 이를 둘러싼 한-중간의 논쟁은 확실히 정부 차원의 공방거리가 되었다.

더구나 지난 12일 우리 정부는 8월중으로 한국-대만간 정기항로 개설을 위한 항공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외교통상부는 이 문제가 한-대만 국교단절 이후 1993년부터 추진돼 온 민간차원의 상업적 교류의 문제로 최근의 고구려사 왜곡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뜻을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일이다. 1천4백년전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으로 무너졌던 고구려사의 귀속문제가 반세기전 중국 공산당과 재중국 조선인민에 의해 쫓겨났던 장개석의 대만 문제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러시아 혁명사>를 쓴 E. H. 카아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그러므로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를 둘러싼 한-중간의 갈등 역시 21세기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언젠가 현재와 과거가 될 양국간의 미래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후진타오 정부는 향후 2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7%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GDP를 2000년의 4배, 1인당 GDP를 3천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하면서도 러시아, 몽고, 한국, 일본, 미국 등 주변국과 인접하고 있는 동북지역의 안정과 통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200만에 가까운 조선족이 집단거주하고 있는 연변과 길림 등의 지역은 이농과 이주노동, 실업이 일반화되면서 경제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으며, 일부 귀국자들의 타락한 소비행태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까지 떼이고 추방당한 노동자들이 빚더미에 신음하는 가운데 이혼과 범죄율이 급증하는 등 ‘코리안드림’의 적지 않은 후유증이 지역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통일된 한국이 중국을 위협하거나 조선족의 동요를 비롯한 중국내 불안요인이 강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통일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 하에 놓이는 것은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차라리 중국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면 현재와 같은 분단체제를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동북공정은 남북통일 후의 영토문제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북한 정권이 붕괴했을 경우 중국의 개입 명문을 정당화하고 북한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준비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고대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이듯이 북한 역시 중국 현대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이 퇴조하는 가운데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민족주의라는 정반대의 수단을 통해 12억 인구에 대한 지도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것은 분명 비판의 대상이 될만하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한류’와 ‘자본’을 앞세워 조선족 거주지역을 헤집고 다니는 한국인들의 천박한 행태가 있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끌려다니며 이라크파병을 결정하고 중국 국경을 넘어오는 탈북행렬을 자극하는 한국 정부 일각의 어리석음도 짐짓 작용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안정과 평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질서있게 진행되고 중국의 역할이 그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면, 중국도 우리의 통일에 대해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와 함께 2001년 한국 국회가 ‘재중국동포의지위에관한특별법’을 상정한 것이 동북공정을 가속화한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도 곱씹어볼 일인 것 같다. ‘노동허가제’ 도입을 통해 이주노동자 일반의 지위를 개선하지 않고 조선족에 대한 ‘국적취득’ 등 특별조치를 고려하는 것은 중국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구실로도 작용할 수 있다.

우리의 조부모들은 궁핍한 몸으로 국경을 넘었지만 중국의 동북지방에 물에 대고 논농사을 들여와 그 지역의 농업생산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 ‘조선민족의 독립’과 ‘중화민족의 해방’이라는 이중과업을 중국인들과 함께 수행했다. 내전기간 동안에도 조선족은 수만명의 자제들을 전선에 내보내 국민당군대를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적기에는 조선족 선열들의 붉은 피도 물들여져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등록되어 있는 혁명열사의 93%가 조선족이라는 것은, 요란한 ‘한류’ 열풍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중국 사회에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토대인 셈이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절, 가장 탁월한 민족시인이자 인류시인이었던 윤동주는 ‘중국 조선족이 낳은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 한국의 교과서에 두루 실려 있는 그의 시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에는 다양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이름’의 그들이 오늘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의 편가르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 鏡, ?, 이런 異國少?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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