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노점상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모여서 낡은 나무 책상을 쪼개 모닥불을 피워놓고 삼겹살에 막걸리, 소주를 한 잔 하면서 생활을 나누는 곳, 황학동은 도시주변의 정서와 농촌의 정서가 묘하게 섞인 마지막 공동체였다.’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진보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이 펴낸 <마지막 공간>은 섬뜩하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한 장 한 장은 편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인 청계천 사람들은 근현대를 넘나들며 토악질하던 당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삶이 보이는 창’ 르뽀모임팀과 수강생인 중학교 교사, 사회복지사, 시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2명의 글쓴이, 2명의 사진작가들은 10개월에 걸쳐 황학동, 밀리오레 러시아 타운, 평화시장, 광장시장, 세운상가를 돌며 청계천의 수많은 삶을 만난다. 인터뷰를 통해 청계천의 인간 군상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세계의 비참’이 보여주는 사회에 대한 깊은 시선과 직접적인 구술의 마이크로적인 생생함을 결합시키려 노력했고 청계천 현장 사람들의 몸짓, 시선, 어투, 표정, 심리 등 미시적인 것까지 잡아내려 애썼다. 그들 덕분에 잃어버린 청계천의 세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필진들은 청계천을 걸으며 근대와 현대가 주는 부재와 결핍을 만난다. 밀리오레 상인 가제웅씨는 말한다.

“복지시설이요? 그런 건 전무하죠. 애초부터 고민자체가 없어요.”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복지냐’는 되물음이다. 쇳가루를 마셔가며 일하는 공구상가 사람들은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다방에서 커피 마시고 좁은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게 복지이고 문화의 전부다.

“어제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는 황학동 노점상 아저씨의 말처럼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사라진 것의 소중함, 아픔을 깨닫게 될 것이다. (420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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