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생명을!’ 내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투쟁이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올해 병원 투쟁은 막판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까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회적 주목을 받은 흥미진진한 투쟁이었다.

지난 3월 1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산별교섭과 산별투쟁, 5월 25일 쟁의조정신청, 6월 10일 산별 총파업 돌입, 23일 산별교섭 잠정합의, 지부교섭 전환, 대다수 지부교섭 타결, 7월 27-29일 전 조합원 찬반투표... 등 숨가쁘게 달려왔다. 투표에서 조합원들은 78.6%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일부의 논란을 불식시키고 이후 산별교섭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은 노동계가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교섭구조 확립과 임단협을 넘어서는 사회 공공성투쟁, 산업정책과 고용안정 관련 노조의 활동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이번 산별교섭의 특징과 성과를 알아보고, 이후 남는 과제를 함께 검토해보기로 한다.

산별교섭의 시대의 개막

먼저, 금속, 금융노조에 이어 올해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건설 6년 만에 산별교섭이 완전 성사되면서 이제 각 조직의 역사와 특성에 기초한 본격적인 산별교섭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병원에서 산별 총파업을 통해 몇 단계를 뛰어 넘는 산별교섭의 진전은 ‘우리나라에서 과연 산별교섭이 가능할까?’ 라는 세간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며 산별운동에 가속도를 붙였다.

내용면에서도 병원계를 대표하는 대학병원의 전원 참가, 산업별 의제와 주5일제를 포함한 주요 근로조건이 규모와 특성의 차이를 넘어 100여개 병원의 단일한 합의서로 만들어지면서 이후 산별노조가 규모와 조직적 편차를 넘어 연대와 평등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두 번째 특징은 노동운동의 의제 확장과 사회적 파급력이다. 총 8쪽 10장으로 구성된 이번 산별협약 내용 중 산별기본협약, 의료산업발전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 구성, 산업별 최저임금제 도입, 보건연대기금조성, 의료기관 주5일제 시행의 원칙과 일자리 창출 합의 등은 그동안 기업별교섭에서 도저히 불가능했던 산업정책 개입과 비정규직, 미조직 문제 해결에 한 걸음 다가섰다.

타결 전후로 최임위에서 최저임금 확정, 노조 없는 병원 등에서 수많은 문의전화를 받으면서 산별교섭이 주는 사회적 파급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특징은 금속노조의 손배 가압류 금지 합의와 함께,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쟁점이 되어왔던 직권중재 없이 노사자율교섭에 의한 타결원칙을 산별기본협약에서 합의하였다.

실제로 올해는 파업 14일 동안 필수인력배치와 함께 직권중재 없이 노사자율교섭으로 타결되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이런 결과는 2002 가톨릭중앙의료원, 경희의료원 장기파업 등 피어린 악법 철폐투쟁의 성과이며, 실질적인 무력화의 출발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산별교섭을 둘러싼 내부 조직적 준비와 조직강화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조직 내부적으로 ‘산별교섭 올인’ 을 외치며 '산별요구-산별교섭-산별조정신청-산별총투표- 산별총파업'을 일찍부터 투쟁 기조로 확정하면서 수차례의 현장 간담회와 간부 토론을 통해 대중적 결의를 모았고, 산별 5대요구로 모든 현장 요구 집중, 20억이 넘는 투쟁기금 조성, 80% 가까운 쟁의행위 투표 찬성, 121개 병원에서 1만명이 넘는 총파업 참가 등 잘 준비된 투쟁과 꾸준한 여론홍보작업, 산별중앙 조직의 높은 통합력과 집중성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행된 산별교섭이 중간에 좌초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외형적인 결과를 떠나 준비과정과 조직력 등이 산별교섭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함께 검토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 산별교섭이 조합원의 의식변화와 조직 강화에 미치는 폭발적인 영향에도 주목해야한다.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의 틀을 바꾸자

이제 산별교섭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당장 하반기부터 각종 특위 구성과 2005년 산별교섭을 노사가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하고, 노조 내부적으로는 조직적 평가 작업과 함께 내년 보다 진전된 산별교섭을 준비해야한다.

특히 이번에 쟁점으로 제기되었던 산별협약의 원칙, 조직내부 민주집중제 확립, 산별파업의 범위와 적법성 문제, 산별교섭에 이은 지부교섭에서 사측의 불성실교섭 문제, 이중파업 등에 대한 토론과 함께 사용자 대표단 구성과 교섭방식,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의제 배분, 산별 임금체계, 산별교섭 대응체계 강화, 산별파업 전술 등에 대해 집중적인 준비가 진행되어야한다.

산별교섭은 단지 교섭형태를 바꾸는 실무·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노동운동과 노사관계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철학적, 전략적 문제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후 노사정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높이는 산별교섭, 교섭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교섭문화,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산별교섭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그동안 다소 지지부진한 산별운동이 이번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과 산별 총파업을 계기로 실천적, 구체적 토론을 거쳐 더욱 탄력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기업별교섭을 뛰어넘어 산별교섭과 사회적 교섭 등 중층적 교섭구조 확립에도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