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변호사 500명이 이라크 추가파병은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선언이 있었지만, 대통령과 정부, 열린우리당은 막무가내다.

하기야 추가파병을 해야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는 적나라한 ‘국익’을 내세우는 모습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낸다고 봐야 한다.

그런 만큼 파병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한 저항도 더 치밀하고 전 방위적일 필요가 있다. 나는 곧 있을 17대 국회의 국정감사가 그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리는 ‘돈’이다. 베일에 싸인 ‘이라크 전비’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계기는 마련됐다. 지난 7월16일 아랍권을 대상으로 한 <아리랑TV>의 이라크 파병 홍보방송에 방송발전기금 37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방송위원회의 결정이 그것이다.

용도와 맞지 않는 이 사업에 방송발전기금이 지원되는 과정에서 ‘이라크 전비’ 규모라는 천기가 누설된 것이다. <아리랑TV>는 국내·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는, 문화관광부가 주무부처인 국책방송이다.

천기가 흘러나온 과정은 이렇다. 돈이 없어 쩔쩔매던 <아리랑TV>는 올해 초 “방송망 확장을 위해 파병장병의 안전과 국익 홍보를 명분으로 이라크 파병홍보 방송을 추진”한다. 문광부와 협의를 거쳐 지난 3월 국방부와 문광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한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의 거부로 지난 4월 방송발전기금 지원을 신청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국고 예비비에서 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부처마다 달랐던 것이다.

예산처의 ‘거짓말’을 확신하는 이유

기획예산처는 “(문제의 파병홍보사업 역시) 해외방송 확장 등 아리랑TV의 기존 사업과 같은 개념으로 보고 기금에서 지원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광부와 <아리랑TV>는 “예산처가 올 2월 폭설과 이라크 파병 등으로 예비비가 부족하니 기금 지원을 신청하라고 말했다”고 강조한다.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산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올 2월 폭설’과 ‘이라크 파병 지원’이라는 근거는 문광부에서 나올 수 있는 성질의 답변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예산을 주무르는 예산처에서만 가능하다.

일반회계에 책정되는 예비비는 두 가지로 나뉜다. 국가의 일반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출에 대응하기 위한 일반 예비비와, 재해대책과 공무원 인건비 등의 용도에 충당하기 위해 설정된 목적 예비비다. 목적 예비비가 부족하면 일반 예비비에서 끌어다 쓸 수 있다.

<아리랑TV>에 지원할 수 있는 국고는 일반 예비비에 속한다. 2004년 목적 예비비는 재해대책 1조4천억원, 공무원 처우개선 2천억원 등 1조6천억원이다. 일반 예비비는 9,980억원이다. 올 2월 폭설피해 복구비는 목적 예비비에서 지출되는 만큼 일반 에비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국고에서 아리랑TV에 지원하지 못할 만큼 일반 예비비를 꽁꽁 묶어두는 속사정은 ‘이라크 파병 전비’로 귀착된다. 일반 예비비 말고 2004년 일반회계에 계상된 이라크 파병비용은 2,300억원이다.

파병반대 국회의원들, ‘예산의 정치’가 ‘저항의 몫’

예산처가 부린 또 다른 국민 우롱 사례도 ‘예산처의 거짓말’을 확신하는 두 번째 근거다. 예산처는 지난 7월3일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추경안에는 2004년 일반회계 세입 산정 당시 기획예산처가 과다 추산해 발생한 예산부족분 6,229억원을 보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반회계에 전입되는 한은 잉여금이 애초 2조4천억원에서 1조8,771억원으로 줄어든 데 따른 부족분 5,229억원, 일반회계에 전입되는 통신사업특별회계 잉여금이 애초 1천억원에서 0원으로 감소한 데 따른 부족분 1천억원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의 문제제기가 있자 예산처는 “예산 편성 당시의 예상과 달리 2003년 하반기부터 환율 하락과 이메일 고지서 발송 급증 등에 따른 우편수요 감소로 한은 잉여금과 통신사업특별회계 잉여금에 각각 결손이 생겼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일반회계 세입 편성 당시 국회는 “2004년 한은 잉여금 세입이 2조5천억원으로 계상돼 있으나, 한국은행의 9월말 수정 전망에 따르면 최근의 환율 하락 및 국제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6천여억원이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등은 이라크 파병 예산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외교부가 각종 국제기구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려 한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추가파병이 이뤄질 경우, 주둔기한은 올해 말로 끝난다. 천연덕스럽게 헌법을 파괴하는 파병세력은 주둔기한 연장을 추진할 것이다. 그때가 ‘올인’ 싸움의 시점이다.

만약 올해 전비가 무려 1조2,280억원(2,300+9,980억원)을 웃돈다면, 지금보다 많은 국민들이 움직이지 않을까. 이런 ‘예산의 정치’가 파병 반대 국회의원들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해야 할 ‘저항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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