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경제관료들이 국민은행으로부터 500만원 상당의 자문료를 받은 문제로 정, 관계는 물론이고 금융계도 시끄럽다. 해당 전현직 관료들은 전윤철 감사원장, 이헌재 재경부장관,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 등 그야말로 정재계의 권력 실세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문제는 잠잠해지기보다 오히려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며 논평을 냈고, 21일에는 경제부총리의 사의표명설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들은 어딘가 핵심을 비껴가는 듯하다.

이 문제가 언론에 처음 보도된 때는 감사원의 카드특감 결과가 발표된 16일 직후였다. 때문에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관련자들은 “감사원이 카드대란 책임을 모두 금감원에 돌리면서 정부기구화해야 한다고 밀어붙이자 이에 반발한 금감원이 관련 정보를 흘렸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이헌재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의도 쪽은 아니야”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언론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로 뻗쳐나갔다. 하나는 ‘그럼 도대체 누가 흘렸냐’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 내 386세력과 이헌재 장관의 불화설’에 관한 집중이었다.

언론은 이헌재 장관과 386세력간 대립에 초점을 맞췄다. 이 장관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주식백지신탁 등을 언급하며 ‘시장경제 사수론’을 편 것과 관련, 여권내 386세대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내놓은 것. 과거 “386이 경제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이 장관의 발언도 이러한 분석에 한몫했다.

그러나 자문료라는 이름으로 소위 ‘보험금’을 지불해 온 김정태 국민은행장에 대한 비판은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개발독재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관행, 즉 관치금융의 고리가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김정태 행장은 증권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관치금융 관행을 타파하라고 만들어진 ‘행장추천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해 은행장에 뽑힌 1호 인물이다. 그런 그가 500만원을 뿌리고 다닌 것은 ‘큰장사꾼’이란 세평과는 어딘가 안 맞다.

돈을 받은 사람들도 “세금 낸 합법적 돈”이라며 떳떳하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양심에도 떳떳한지 물어볼 일이다. 대한민국 법무부보다 ‘김&장’이 더 위에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퇴임하는 관료들을 고문으로 모시기 위해 눈에 불을 켠 회계법인들이 즐비한 이 시대, 이 한국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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