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금융감독 당국의 부실기업 퇴출 방침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퇴출과정에서 잡음을 없애기 위해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실기업 퇴출 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은행들의 보신주의 때문에 퇴출작업이 제대로 이행될 지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선별작업이 투명하게 이뤄질 지에 대한 의구심도 나타내고 있다.

◆원칙에는 환영하지만 시행과정에서 부작용 우려 크다=재계는 금융권을 정상화하기 위해 그 동안 블랙홀로 지목돼 온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겠다는 원칙에 환영을 표시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부실기업의 퇴출은 늦은 감이 있지만 잘 된 일”이라며 “퇴출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 될 경우 건전기업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부실기업 퇴출은 때늦은 감이 있다”며“정부 계획대로 연내에 퇴출작업이 마무리 될 경우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인 환영에도 불구하고 시행과정에서의 잡음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살생부 작성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작용해 원칙과 기준이 모호해 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98년 부실기업에 대한 살생부를 작성했을 때 정치권의 압력으로 대그룹의 상당수 계열사들이 살생부에서 빠졌다”며 “자칫 몸통은 손도 못대고 깃털만 건드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부실의 몸통을 놔두고 깃털만 뽑을 경우 이번 2단계 구조조정은 또다시 혼선만 야기할 것이며 새로운 사회적 갈등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재계는 우려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98년 살생부 작성시 대그룹들이 정치권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했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권의 로비를 근절하도록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과 기업의 결탁으로 구조조정의 취지 제대로 살릴 수 없다=2단계구조조정의 성공여부는 은행에 달려 있다. 주 채권은행이 거래 기업들의‘성적표’ 를 토대로 퇴출 여부에 대한 심사를 벌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그러나 은행권이 과연 퇴출 대상기업들의 성적표를 작성할능력이 있는 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퇴출기업의 기준에 미래가치까지 반영해야 되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살생부에 낀 기업의 경우 이의제기는 물론 소송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대기업의 재무팀 관계자는 “은행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수치를 토대로 퇴출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기업들의 수치도 가공될 수 있어 은행이 옥석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은행과 기업의 결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퇴출기업이 많을수록 공적자금 투입 금액이 많아지고 그럴 경우 향후 은행권 구조조정과정에서불리한 입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 은행들로서는 가급적 퇴출기업 수를줄일려는 ‘모럴 헤저드’ 가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로서도 퇴출계열사가 많을수록 이미지가 나빠지는 데다가 혹시 퇴출기업정리과정에서 총수들의 사재출연 요구도 나올 개연성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부실기업 퇴출은 지난 98년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기업의 결탁하에‘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은 또다시 덮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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