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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제론의 모순
  • 이원보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04.07.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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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쟁의의 열기가 높다. 정부가 집계한 노사분규 건수는 작년 수준과 비슷하지만 참가자수와 근로손실일수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6월 하순부터는 이라크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겹쳐져 한층 더 뜨거워졌다.

노동조합의 요구조건은 올해도 다양하다. 요약하자면 노동조건 저하없는 주5일 근로제 실시와 인원충원,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공공성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등에 임금인상이다. 어느 것이나 노조로서는 당연한 조건들이지만 자본 쪽의 반대는 매우 거세다.

국내 경기는 사상 최악에 언제 좋아질지 아무도 점칠 수 없는 판국인데 자기 이익만 챙기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내밀고 파업투쟁만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노동자들의 자제를 촉구해 왔다. 그리고 나름대로 노사정관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탕발림이라는 혹독한 비판도 있지만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계획을 제시하고 새로운 노사정관계의 정립을 위해 정성스레 공을 들이는가 하면 노조가 요구한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공론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보건의료노조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직권중재의 압력을 끝까지 뿌리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노조는 예정대로 투쟁을 밀고 나갔고 노사분규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대통령의 연초 약속을 기억하는 각 부처로서는 초조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듯 하다.

쟁의행위에는 많은 위험부담이 뒤따른다. 투자위축, 해외이전, 무노동·무임금, 구속·해고·징계, 손배·가압류에 자칫 조직분열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경기침체의 심각함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고 노조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비록 왜곡된 측면이 많지만 존재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그런데도 노동계 투쟁의 열기는 계속 분출되고 있다. 혹자는 그 원인을 모든 것을 투쟁으로 돌파하려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전통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일 뿐 보다 근원적인 답은 아니다.

무너지는 삶의 조건과 울분의 누적

올 들어 노동쟁의가 본격화하기 전에 두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버렸다. 얼마 전에는 청와대 앞에서 한 택시 운전사가 몸에 불을 붙였다. 언론보도에 따르자면 카드 빚 430만원을 갚지 못해서였다. 지난해 물류대란을 일으켰던 화물차 지입차주 4명 가운데 1명이 신용불량자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우리사주조합이니 자본참가니 하여 주식을 샀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예는 비일비재하다.

언제 어떻게 불어닥칠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위협과 40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의 존재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자본 쪽과 정부가 바람대로 임금을 자제하여 더 못한 계층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극’하고 있다. 생활비의 상승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거비와 사교육비의 증가이다.

올 1/4분기에 도시근로자의 교육비 비중은 지난해보다 15.6%나 늘어 역대 최고수준인 29만7천원(13.8%)으로 올랐다. 주거비 비중도 작년보다 11.1%나 증가하였다.

물가도 뛰고 있다. 4월부터 철도요금이 실질적으로 인상되었고 기름값도 올랐다. 7월부터는 지하철, 버스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 크게 올랐다. 가구당 세금은 13.7%, 공적연금은 13.3%, 사회보험료는 15.0%나 늘어났고 국민 한 사람이 낸 세금은 무려 299만700원으로 10년도 안 돼 2배로 뛰었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져 전국 가구 중 31.9% 가량이 적자상태이고 상하위 20%계층의 소득격차는 1년전 7.23배에서 7.28배로 더 늘어났지만 비정규직이 계속 늘고 실질임금 상승이 노동생산성 증가에 크게 못미치는 현실에서 소득불균형이 개선되리라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구조적 실업과 고용불안정의 위협이 눈에 뻔히 보이고 사회복지환경은 제자리인데 노동자들의 반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조가 자제하면 기업 스스로가 임금격차를 줄이고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겠다는 확실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1년 사이 15.9%나 늘어나는 산업재해자나 1,605명에서 2,923명으로 늘어나는 산재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투자를 늘린다는 약속도 없다.

여전히 노동의 유연성 확대 요구는 드세기만 하며 기업 투명성이나 계열사간 출자제한 같은 경영구조 개혁은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울분 촉발시키는 정부

노동자들의 불만을 부추기는데는 정부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5월초 ‘공기업 산하기관의 주40시간제 시행방향’이라는 지침을 시달했다.

산하에 단체나 기업을 가진 모든 행정기관에 시달된 이 지침의 요지는 주40시간제 시행에 대비하여 단체협약에 정해진 휴일 휴가를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맞추라는 것이고 그 결과를 공기업 및 산하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양대 노총이 격렬히 비난했지만 기획예산처는 ‘주40시간 근무제 정착노력’을 경영평가지표로 채택하려는 계획을 버리지 않았다. 여기에다 금융감독원은 파업여부를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한마디로 노사 자율교섭의 걸림돌로 작용하였을 뿐 아니라 정부 스스로 헌법과 노동관계법을 어기는 표본적인 예이다. 당초에 정부는 삶의 질 개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존의 단체협약 수준을 근로기준법 기준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또한 파업은 노동기본권의 행사다. 그런데 이를 경영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이런 처사는 헌법에 보장한 노동기본권과 노동관계법이 정한 바,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유지 개선 향상시킨다”는 노동조합의 정의를 부정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노동부장관은 이라크 파병반대 파업은 불법 정치투쟁이라고 했다가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이해찬 새 국무총리는 취임 첫소리로 점잖게 노동운동을 나무랐다. “70,80년대와 달리 이익분쟁에 치중하고 있으며 … 하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계의 투쟁이 과하다”는 것이 그 요지다.

요약컨대 정치투쟁도 안 되고 이익분쟁에 치중하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잔인한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은 인간 본연의 행동이며 역사상 모든 노조들이 세계평화의 옹호와 전쟁반대를 선언과 강령에 의해 주요 목표로 천명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1996년 겨울 근로기준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한 전국적 총파업이 정당화되었음은 역사가 입증함에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70,80년대나 지금이나 이익분쟁에서 시작하고 전쟁반대 등의 정치적인 활동도 노동운동의 한 영역임을 그 해박하다는 총리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노동부장관은 정치투쟁 하지 말라하고 국무총리는 이익분쟁하지 말라한다.

노동조합은 정치투쟁도 경제투쟁도 모두 삼가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만일 이 발언들이 이제 70,80년대 독재정권 시대는 가고 민주적인 참여정부가 들어섰으니 노동조합은 손 놓고 정부에 협력하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야말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당국자의 발언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노동자투쟁의 근본원인과 배경을 따져보지 않고 현상 자체에만 매달려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들 때문에 선진적 노사관계 구축이 더디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곱씹어 볼 문제다.

이원보 본지 논설위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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