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 평균보다 세금을 더 걷는다고?

이렇게 주장하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금 부담이 선진국보다는 낮다는 게 지배적인 통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21일과 22일 세금과 관련한 언론보도들이 잇달아 쏟아졌다. 하나는 2003년 국민 1인당 조세부담률이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었다는 보도다. 국세와 지방세를 더한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조세부담률은 20.3%를 기록했으며, 국민 1인당 299만700원을 부담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사회보장지출 등을 감안할 경우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최고 15.3% 높다는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전문연구위원의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조세감면 축소와 공정과세가 해답

2002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8%이다. OECD 평균인 27.6%와 견줘보면 낮은 수준이다. 국민부담률 역시 마찬가지다. OECD 평균인 36.6%를 한참 밑도는 24.4%이다.

국민부담률은 조세부담액(국세+지방세)에다 사회보장 관련 부담액을 더한 합계치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하지만 이런 세 부담 비중뿐만 아니라, 1인당 소득수준과 부양률(15살 미만 및 65살 이상 인구에 대한 전체 인구의 부양 부담), 정부의 사회보장지출 비중 등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혜택을 감안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에 비해 1.0~15.3%, 국민부담률은 8.3~17.3% 높게 나온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2002년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보장지출 비중은 OECD 평균인 13.2%의 3분의 1 수준인 4.0%에 불과하다.

이런 연구결과와 함께 박 전문연구위원은 흥미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앞으로 세금 인상을 통한 국민부담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체 국세수입의 15%에 이르는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고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소득세제를 개편해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부담률이 OECD 평균보다 낮다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재정경제부의 안일함을 꼬집는 한편, 비과세 감면을 없애고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도록 하는 ‘정공법’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더 많이 내도록 해야

‘부자신문’들에게 박 전문연구위원의 보고서가 정부 비판을 위한 요긴한 땔감으로 이용됐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부자신문들이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도록 하는 쪽으로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잡을 때에도 ‘하향 평준화’니 ‘조세 저항’이니 ‘평등주의’니 하면서 딴죽을 걸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신문들에 이끌려 정부 욕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악순환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을 통해 끌어올려야 할 목표지점은 어느 정도일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의 경우 2002년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보장지출의 비중은 겨우 4.0%에 불과했다. 반면 OECD 평균 13.2%나 됐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들은 국민연금 갹출료나 의료보험료 등 사회보장 분담금을 얼마나 부담하고 있을까. 2000년을 기준으로 할 때,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보장 분담금은 4.4%, 총조세 대비 사회보장 분담금은 16.7%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과 엇비슷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사회보장 분담금의 비중이 아주 높다.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보장 분담금은 각각 8.8%, 12.4%, 11.4%나 되고, 총조세 대비 사회보장 분담금은 25.7%, 35.1%, 30.1%에 이른다.

적어도 이 수준이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게 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여유만만’한 해외송금

최근 부유층의 자본 해외유출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98년 16억달러를 조금 넘던 개인의 증여성 해외송금액이 2003년 69억달러를 웃돌았다.

2004년 1~5월 해외이주비와 재산 반출, 증여성 해외송금의 명목으로 해외로 유출된 자금은 55억6천만달러에 이른다.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2001년 1월 실시된 2단계 외화자유화가 2002년 7월부터 대폭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건당 5만달러 이상의 증여성 해외송금, 건당 10만달러 이상의 해외체재·유학비의 고액 대외송금, 건당 5만달러 이상 여행경비 휴대반출에 대한 한국은행의 확인?신고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2003년 5월~2004년 4월 10만달러 이상의 거액을 송금한 사람이 5만명에 이른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들을 대상으로 불법 송금에 대해 뒤늦게 서면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게 하자고 하면, ‘부유층도 숨쉴 수 있게 해야 한다’(연세대 정갑영 정보대학원장)는 논리가 동원되며, “자본 해외유출이 지금보다 더 급증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것이다.

반대로 외환자유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다고 떠벌렸지만, 그들이 코웃음 치던 ‘가랑비에 옷 젖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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