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미래를 밝게 본다.

추상적인 역사발전론을 믿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을 보면 그 세력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첨단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경쟁 지상주의의 시대에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 열정을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비록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사치스럽고 건방진 생각이라 여기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 보람 있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회운동의 대열에 계속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수가 적고 일이 고되더라도 기왕이면 진보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종사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회의 운동은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소위 ‘잘 나간다’ 싶으면 그 성공에 함께 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인재를 가려 뽑고 잘 쓸수록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전략과 정책도 더욱 세련되고 치밀해질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은 이런 희망을 손상시키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정책연구원과 보좌진에게 당초 약속했던 급여를 지급하기 어렵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한국노총에서는 총액연봉제과 부서별 성과급제를 도입한다면서 많지도 않은 박봉을 또다시 깍아내리는 결정을 내렸다.

5만명의 진성당원과 10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이 당의 미래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참 한심하다. 또 86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한다는 내셔널센터의 인사경영철학이 답답하다.

조직 내부의 혹자들은 말할 지 모른다. 견뎌주는 사람들이 아직 있고 돈쓸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니 내핍을 견디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또 어떤 지도자는 당당히 말할지 모른다. 사무총국 내부의 온정주의와 보신주의가 조직을 후퇴시켜왔고 노동조합에도 현대적 경영기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이건 아니다 싶다. 민주노동당이 이번의 결정을 눈감고 대충 밀어붙이려 한다면 아마도 상승기의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민주노동당의 중장기 파동은 머지 않아 정점에 도달했다는 진단을 받게 될 것이다.

당장 신규채용된 정책연구원이나 보좌진뿐만 아니라 참고 견뎌 온 당직 활동가들도 여의도의 바깥을 보고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한국노총이 조직의 개혁과 혁신을 일꾼들간의 성과급 경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필시 대부분의 직원들은 평범한 보수와 가족들에게 덜 미안한 다른 직장을 찾아나설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한국노총에 가해지는 적지 않은 비난에 대해 방어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남아공의 코사투(COSATU)는 동맹관계에 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했을 때 각급 조직의 상근활동가들의 보수를 긴급히 재점검했다. 그리고 재능과 역할에 걸맞는 충분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강구해 나갔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당과 민족회의의 활동이 금지되었된 시절에 노동조합으로 유입됐던 많은 두뇌들이 ‘더 푸른 목초지’를 찾아 빠져나가는 ‘두뇌유출(Brain Drain)’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이은 각급선거 때마다 수많은 유능한 운동가들이 정계과 관계, 기업으로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이 노동운동의 가장 풍족한 시대였다고 회고하겠는가.

‘대학생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쓴 전태일의 일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과 약속위반을 밀어붙이고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이런 기억은 70-80년대의 낭만적 회고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고 미안하게 여기며, 운동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이기주의를 억누르고 있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덩치와 위력을 키울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조직이다. 자원을 모으고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경쟁상대를 이기지 못하게 되고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도 없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잘 나가는’ 몇몇 자리만을 놓고 벌이는 퇴행적 경쟁주의만 겨우 살아남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