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아름다운 사람들 펴냄)를 통해 박순희·이철춘·이총각·정향자·최순영 등 70년대 여성노동자들과 한껏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던 박수정(36)씨가 이번엔 우리 이웃들의 삶을 담은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이학사 펴냄, 304쪽, 9,800원)을 펴냈다.

극단 한강과 <연극 전태일>을 공동 창작했고, <삶이 보이는 창>, <진보평론> 등에 인터뷰와 르포를 기고해온 박수정씨는 구로동 재개발 지역 빈민들, 영등포역 노숙인들, 버림받은 독거노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박수정씨는 인터뷰와 르포를 주로 쓰는 글쟁이다. 스스로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지 의아스럽다고 말하는 그는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가 얼마나 소심한가 하면요, 인터뷰를 잡아놓고 한 일주일은 수화기도 못 들고 전화번호만 쳐다보는 일도 허다했어요. 어떤 인터뷰 작가가 자신이 만날 사람을 겁내겠어요.”

그래도 그에게는 처음 만날 때부터 묻어나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하기보다는 내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줄 양으로 사람을 만난다. 취재원들은 그와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놓았던 삶을 토로하는 것이다.

1988년 남편의 권유로 진보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 인터뷰와 르포를 싣기 시작한 그는 “저는 사람들이 참 궁금하거든요. 리어카에 잔뜩 박스를 실고 가는 할머니, 그 짐 속에 묻힌 조그마한 할머니의 삶은 어떨지, 길가 조그만 바구니에 나물을 다듬고 계신 할머니에게는 또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말이죠”라며 말하는 그는 인터뷰가 무엇인지, 르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날수록 점점 더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고 했다. 왜인지, 무엇인지 확실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낮고 작고 소리 없는 곳, 박수정씨는 그런 곳으로 자꾸 찾아 들어갔다.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에서는 그는 머리에 이와 서캐를 주렁주렁 달고 공부방에 찾아오는 아이들, 중국에서 인텔리겐차로 지내다가 7천만원을 사기로 잃은 뒤 식당에서 막일을 하는 조선족 여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탈북자, 노인들과 주로 이야기를 나눈다.

10년째 서울시 구로구 구로3동, 일명 구주택 지역에 살고 박수정씨. 20대의 삶을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보내고 조그마한 몸짓에 담겨있는 그 열정이 식지 않아 2년간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산하의 ‘공연예술아카데미’ 극작·평론 2년 과정에 뛰어 들었던 그.

“세상을 관망하듯 그리 바라보면 우리들의 삶은 돈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더라구요. 새벽녘 골목길을 다니며 쓰레기를 치워주시는 청소부 아저씨, 시장 곳곳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우리 이웃들, 비록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지만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소외’ 시켰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주인인 것이죠”라며 ‘소외’된 우리 이웃은 없다고 말한다.

3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야기를 마친 후 돌아서는 길에 박수정씨는 우리 주변의 누구에게라도 귀 기울여 보라고 전한다. 아마도 그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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