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기업도시’ 건설 발상은 참으로 흥미로운 이슈다.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의 도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자본에 대해 토지수용권과 처분권을 부여하고 대출제한을 완화하는 한편, 기업들이 학교와 병원을 알아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내친 김에 정리해고와 파업시 대체근로, 파견노동자 사용을 무한정 허용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니 공정거래법, 은행법, 교육법, 노동법을 완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해방구’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이 기업도시 구상을 상생의 경제를 추구하는 ‘뉴딜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하자고 즉각 화답했다.

물론 기업도시의 유치대상 지역에서 수도권과 충청권은 제외하고, 인권ㆍ노동ㆍ환경 관련 규제도 풀지 않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재경부, 건교부의 장차관들은 잇달아 전경련의 주장이 경제성장과 투자증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환호하면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재계를 후원하겠다는 약속들을 내놓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 종결 이후 ‘투자확대’라는 화대를 통해 조성되고 있는 재계와 정부의 허니문이 어떤 사생아를 탄생시킬지 우려하게 만든다.

도시는 시민들의 공동체이다. 그 곳에는 자본가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어린이와 노인, 실업자와 노숙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전경련의 기업도시 발상을 대하면서 1995년 이후 미국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 존 스위니 AFL-CIO 위원장의 ‘유니온 시티(Union City)’ 구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두 개념이 완전한 대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유니온 시티, 우리말로 옮기면 ‘노조 도시’로 부를 수 있는 이 개념은 미국 노동운동이 꿈꾸고 있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도시 공동체’를 일컫는다.

유니온 시티는 그 지역이 도시든 농촌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힘이 충분히 강하고,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노동자 가족의 삶이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마을이 바로 유니온시티가 되는 것이다.

AFL-CIO의 유니온시티 캠페인은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바로 그러한 마을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미국 전역의 모든 도시를 유니온시티로 만들자는 운동으로 출발했다.

경제성장과 지역개발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기업도시와 유니온시티는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유니온시티는 기업이윤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후퇴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도록 압박을 강화하며, 친노동적인 기업활동과 공공투자를 유도하고 노동자와 기업이 이러한 방향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AFL-CIO는 각 지역조직에 대해 지역경제의 흐름을 진단하는 조사팀을 구성하게 하고, 지방정부의 지출과 기업이윤의 흐름을 파악하며 지역경제 현안에 대한 노조대표의 참가를 보장하도록 할 것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층단위의 정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차원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인 후보와 단체들간의 연대를 구축하며, 그 정치인이 대표로 선출될 경우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개입하도록 한다.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노동조합의 지도부와 각종 공식기구의 구성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노동자와 주민의 구성비율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해서 노동조합이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하고, 문화적 다양성이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에 공존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와 같이 유니온시티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AFL-CIO 지역조직의 경우 노조 지역본부의 지도부에 라틴계 이주노동자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도시를 단순한 부동산개발과 이윤획득의 투자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면, 노사가 균형을 이루고 기업과 주민이 함께 공존하는 시민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황무지나 사막에서 빌딩과 공장을 새로 세우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지역공동체를 그러한 ‘꿈의 도시’로 변화시키려는 자세가 있을 때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도시’는 ‘유니온시티’와 함께 건설되어야 할 ‘하나’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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