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금리 인상을 강력히 내비쳤다.

그린스펀은 지난 6월8일 “미국 경제의 강력한 회복 전망”을 근거로, 신중한 속도로 금리를 올리겠다는 기존 태도에서 벗어나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6월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인상폭은 기대치인 0.25%포인트를 웃돌 수도 있어 보인다. 연준은 지난해 6월부터 단기금리(연방기금금리)를 46년만의 최저치인 1%로 유지하고 있다.

그린스펀이 꼽는 “미국 경제의 강력한 회복 전망”의 근거는 일자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일자리(비농림 부문)가 24만8천개가 늘어나는 등 3, 4, 5월 증가한 일자리가 94만7천개나 된다는 점에 한껏 고무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강력한 회복 전망”이라는 금리 인상 명분을 그대로 믿기엔 뭔가 석연치가 않다.

인플레의 진짜 이유는?

무엇보다 그린스펀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늘어난 일자리의 상당수가 임시직이다.
실질임금 증가 속도 역시 “강력한 회복 전망”을 제공하기엔 역부족이다.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기순환의 저점을 이룬 2001년 11월부터 2004년 5월까지 3%를 밑돌고 있다.

이전 6번의 경기회복 과정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9% 상승했던 것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룬다. 모건스탠리의 양심적인 수석경제학자인 스티븐 로치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격차(이전에 못 미치는 6%포인트의 실질임금 증가분)는 2,800억달러에 이른다.

물론, 미국 소비자물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2004년 1분기 소비자물가는 4.4%(연율) 상승해 지난해 1.9%를 훨씬 웃돌았다.

그린스펀은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인상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에 원인을 돌린다. 하지만 2004년 1분기의 경우, 생산성 증가를 감안한 단위노동비용(산출 1단위를 생산하는 데 든 노동비용)은 0.5% 증가에 그쳤다. 이는 2003년 1.3% 하락에 비해 상승한 것이긴 하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은 미미한데 소비자물가는 왜 급등하는 것일까.

일단 분명한 것은 최근 3개월새 16%가 급등한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의 상승이다. 이는 “미국 경제의 강력한 경기회복 전망”과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거의 주목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 기업들이 이윤 마진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비금융 기업 부문의 이윤마진은 급속한 증가율을 보인다. 2004년 1분기까지 지난 1년 동안 이윤 마진 증가율은 27.1%에 이르렀다. 직전 1년 동안에도 20.6%나 됐다.

부동산에서 증권으로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미국 기업들의 이윤 마진 증가세나 세계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꺾인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연준의 금리 인상은 미국 주택대출시장에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02년과 2003년 주택 구입자들이 저금리를 틈타 주택저당채권(모기지론)을 재발행해 조달한 금액은 각각 2조5천억달러, 3조5천억달러에 이른다(이전 최대치는 98년의 7500억달러).

여기에는 금리가 낮아지자 고정금리 모기지론을 변동금리로 전환한 사례가 다수를 이룬다.

처음 5년 동안은 변동금리 모기지론의 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낮은 점을 이용한 것이다. 모기지론이 부추긴 소비지출은 2001년 이후 미국 경제성장률의 92%를 설명했다.

그 결과, 변동금리 모기지론의 비율은 미국 주택 구입자의 35%까지 늘어난 상태다.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경우 모기지론 금리도 덩달아 올라가고 소비 지출을 지탱해온 주택대출시장 역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금융시장에도 큰 타격이다. 미국의 저금리는 이른바 ‘달러 캐리 트레이드(dollar carry trade)’를 가능하게 해왔다. 미국에서 저금리로 달러를 조달해 다른 나라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어온 금융기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2003년 자동차 제조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이 11억 달러인 반면, 금융 자회사인 ‘GM어셉턴스’를 통해서는 28억 달러를 거둬들였다. 그 상당부분이 ‘달러 캐리 트레이드’를 통한 것이다.

연준 금리 인상의 파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혹자는 10년 전 연준 금리 인상의 결과를 상기시킨다. 멕시코 금융위기와 오렌지카운티의 파산과 미국 국내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연준은 왜 금리를 올리려 하는 것일까. 답은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주택시장 거품과 채권시장 거품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주식시장 거품 붕괴에 대응한 그린스펀의 꼼수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혹시 금리 인상을 통한 ‘강한 달러’로 주식시장 거품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자는 심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오는 6월 말부터 4년의 임기를 다시 시작하는 공화당 기회주의자 그린스펀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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