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록, 현물, 시청각 자료 ‘점점 사라져’…조속한 추진 필요

“전태일의 삶은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 주었고, 죽음으로써 참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습니다.”
지난 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물두살 젊음을 불살랐던 전태일. 그는 노동운동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많은 ‘의미’를 남기고 간 사람이다. 전태일의 고민과 생각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일기장.
지금 그 일기장은 어디에 있을까.

전태일의 일기장은 특별한 보관 장치 없이 이소선 어머니에게 맡겨져 있는 상태다. 30년 세월이 흐른 만큼, 종이 상태가 악화돼 자칫 파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렇듯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노동자료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공중’에 떠돌고 있는 노동관련 값진 자료들은 비일비재하다. 조속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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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11일 오후 대규모 노동자료관 설립을 위한 워크숍이 한국노동교육원(원장 안종근) 주최로 여의도 국민일도 CCMM 빌딩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다.

이날 워크숍에는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히토시 이가라시 일본 법정대학 교수(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부소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부),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이승길 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권영순 노동부 노사정책과장, 김경일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신원철 성공회대 교수, 정재윤 독립기념관 전 자료팀장, 전명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리과장 발제자 및 토론자로 참석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노동자료관 왜 필요한가

“자료관은 우리가 과거에 걸어왔던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며 미래의 진보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자료관은 사회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진호 교수는 ‘노동자료관의 설립 필요성에 관한 연구’라는 발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윤 교수는 “기억이 없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기억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며 자료관은 ‘한 사회의 제도적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러한 자료관의 중요성은 특히 노동분야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는 “노동분야야말로 지식과 정보의 역할이 극히 중요하다”며 “노사관계의 평화적,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도 역사성, 합리성에 바탕을 둔 대화, 연구, 토론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 빈발하고 있는 노사간 갈등의 이면에는 정보와 지식의 불평등 문제도 숨어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생각이다. 또한 모아진 노동자료를 기초로 해 연구, 교육, 전시 등을 통해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 역시 잘못된 제도와 관행 해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최근 노동교육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사,정, 학계 관계자의 약 90%가 노동자료관 설립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료 보존, 전체적으로 낙후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는 공공도서관, 민간도서관, 특수 및 전문도서관 등 총 1만여개의 도서관에 1억8천여만권의 장서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노동전문도서관은 전무한 실정. 한국도서관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체 도서관 1만여개 가운데 전문-특수도서관은 562개인데 이 중 노동전문 도서관은 전혀 없으며 다만 노동관련 각종 기관의 부설 도서실이 일부 존재할 뿐이다.<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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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노조의 인력 및 재정부족 등으로 국내 노동관련 도서관 및 자료실 등이 열악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어 노동관련 자료들이 파손, 분산, 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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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호 교수는 “기록자료 뿐만 아니라 깃발, 스티커, 포스터 등 현물자료, 각종 시청각 자료들 역시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또한 노동관련 중요사건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인물들이 사망하거나 기억감퇴, 소재불명 등으로 귀중한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만큼, 조속히 (노동자료관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료관 필요 ‘동의’… 운영주체 등 ‘글세’

워크숍에 참가한 토론자들은 노동자료관 설립에는 입장을 같이했지만 운영주체, 자료관 기능, 자료 수집 문제, 기존 소규모 자료실과 연계 방법들은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운영주체와 관련, 발제자로 나선 윤진호 교수는 “노동전문자료관 설립에는 많은 자금이 소요되며 또 철저한 중립성과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자료관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기여도에 비춰 정부의 재정 지원 하에 중립적인 연구기관 혹은 노사정 3자 공동운영의 기관에서 노동자료관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토론자로 나온 정길오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부 주도는 우려 된다”며 “중립적인 운영을 위해 노사정 공동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노동자료관 설립에서 중요한 점은 자료 수집과 관리의 문제”라며 “기존에 어렵게 노동자료실을 운영했던 주체들을 만나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을지 폭넓은 논의 속에서 자료관 설립이 추진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경일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노동자료관이 너무 노동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에게 가깝게 가기 위해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기능과 내용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자료관 기능 문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진호 교수는 “일단 노동자료관이 설립될 경우, 그 기능은 단순한 옛 자료의 수집, 보존기능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물론 그것이 일차적 기능이지만 이를 토대로 연구, 출판, 교육, 전시, 정보생산의 기능 등 종합적 정보센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노동자료관 설립이라는 ‘총론’에는 노사정이 입장이 같은 만큼, 권영순 노동부 노정과장은 “미시적으로 의견이 다른 부분 등 이후 방향에 대해서는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논의를 전진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윤진호 교수도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노사정위 개편 방향이 논의되고 있으니, 완성된 사회적 대화기구 첫 의제로 노동자료관 설립 문제를 다루는 것이 어떻겠냐”며 “이 문제는 노사정간 윈-윈 할 수 있는 의제로 충분하다”고 제안했다.

김소연 기자


[노동교육원 설문조사] “노,사,정, 노동자료관 설립 90% 찬성”
운영주체는 노사정 공동운영 26.2%…자료관 이용률 높을 듯

노,사,정, 학계 관계자들 약 90%가 노동전문 도서관, 자료관 설치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교육원(원장 안종근)은 지난 2월2일부터 3월16일까지 진행된 노,사,정 및 학계 관계자 300명의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87.2%가 노동전문 도서관, 자료관 설치에 찬성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노동자료관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자료관 설립에 있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노동자료관 운영주체를 묻는 질문에는 노사, 노사정 공동운영이 26.2%로 가장 높았으며 정부출연 연구소 22.2%, 순수한 독립기구 17.3%였고 노동조합이 운영해야 한다는 응답도 15.3%나 나왔다.

‘노동자료관이 세워질 경우 얼마나 자주 이용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36.3%가 ‘1개월에 한두 번’, ‘1주일에 한두 번’(29.8%), ‘1년에 몇 차례’(19.6%), ‘거의 매일’(5.7%) 순으로 조사됐다. 또한 노동자료관에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 제공을 할 경우, 응답자의 41.5%가 거의 매일 자료관을 이용한다고 답했으며 ‘1주일에 한두번’도 38.3%에 이르는 등 이용률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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