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날 노 . 사 . 정 3자가 모처럼 만나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토론회’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3시간 10분여의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현안 문제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끝에 ‘노사정 지도자회의’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노-정, 정-경간에는 이런 저런 만남이 있어 왔지만 노사정 3자가 한자리에서 만나 합의를 이루어낸 것은 5년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합의 후 “우리 노사관계의 장래를 위해서 큰 선물을 줘 우리 경제가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소식이고 노동계도 대체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애당초 달가와하지 않았던 경제계는 혹시 노노간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좀 떨떠름하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는 못하는 눈치다.

아직 노사정 3자기구가 완전하게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노사관계의 향배가 우리 사회의 진로 설정에 최대변수의 하나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 설정의 계기가 만들어짐으로써 노사관계는 일단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노사관계의 새 전기로

노사정 지도자회의는 6월4일 첫 회의를 갖기로 하였다. 이 회의에는 노동계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제계에서 경총과 대한상의의 회장, 정부에서 노동부장관과 노사정위원장이 참석한다.

노사정 지도자회의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 때까지 약 3개월 정도 한시적인 기구로 운영될 것이며 주로 “노사정위 개편문제와 주요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 방향, 일정 등의 공감대를 형성해 이를 향후 노사정위원회로 연결시킬 것" 이라고 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노정 당사자의 태도 변화다. 특히 민주노총과 정부가 두드러진다.
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지 5년만에 노사정 모임에 자리를 같이 했다. 대의원대회에서 탈퇴를 결의한 후 복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후에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상집, 중집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하지만 토론회 참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임단투를 앞두고 노사정간에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정부는 전례 없이 여유 있는 자세를 보였다. 노사정위원회 복원의 전단계로 지도자회의를 구성한 것은 민주노총의 일정을 감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래 “들어오기 싫으면 말아라. 한국노총과 하면 된다”는 논리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일 뿐 아니라 지난해 노동조합의 도덕성, 대표성을 문제 삼았던 것과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정부는 지금의 노사정위원회와 다른 새틀 짜기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그간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실효성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뛰쳐나간 민주노총이나 보다 강한 힘을 요구하는 한국노총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권위와 체계를 중시하는 정부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결단이며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매우 전향적인 변화로 보인다. 그 만큼 정부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대목이다.

여기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총선 이후 정국 장악과 경제상황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며칠 전 노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표들과 재계 대표를 연이어 만났다. 투자활성화를 호소했지만 전례 없이 자신 넘치는 태도로 경제위기론에 대한 반론과 개혁에 대한 저항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계의 협조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논리의 결과일 수도 있고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이 이뤄진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끌어안아야 하는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노사관계 변화에는 결정적인 계기인 것만은 분명하고 노사정 모두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노조의 대표성 시비는 곤란

노 대통령은 앞으로의 노사정 3자기구에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5자대화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하였다.

기업쪽에서는 중소기업이 어렵고 노동계쪽에서는 비정규직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이 방안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대화 틀에 포함시켜 재계와 노동계 문제를 일괄 타결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점에서 그간 노사정 위원회가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단체를 주체로 하여 운영해온데 대한 허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대표를 누구로 하여 참가시킬 것인지가 의문이다. 물론 앞으로 이 문제는 더 논의해서 결정될 일이지만 위원회의 위상과 운영의 효율성과 관련하여 숙고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분명한 합의 이행구조 제시되어야

노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친노도 아니라고 하면서 노사상생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치겠다고 다짐하였다.

첨예한 이해대립의 중립적인 조정자, 중재자로써 노사 양쪽이 모두 사는 길을 찾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정책의 기본방향이나 개혁의 중심을 정함이 없이 모든 것을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

종래 우리는 개혁방향을 분명하게 세워놓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거나 노사간 분쟁을 남기는 예를 많이 경험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5일제 문제였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도 정부는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려 하지 않고 노사합의에 맡김으로써 훗날 두고두고 심각한 분란의 뒷맛을 남겨두고 있다. 상생은 노사자율에 맡긴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사자율은 노사관계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는 자칫 방관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로운 노사정기구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 ‘지도자회의’에서 논의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합의 이행구조를 분명하게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몫이지만 경제계의 인식의 대전환과 협력 없이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경제계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는 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 임단협 협상이 본격화될 것이다. 주5일제, 비정규직문제, 경영참가 등 뜨거운 쟁점에다 이미 운수업계 노동자의 투쟁은 불을 당긴 상태다.

이런 투쟁을 새틀 만들기의 걸림돌로 악용하지 않아야 하고 노사간의 다툼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전제하에 노사정 3자간의 큰 틀에서의 타협을 이루는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 역시 정부와의 관계 정립이 전략적 또는 전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분명하게 정리하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역량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인지가 앞으로 노사관계 발전의 가늠자로 될 것이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본지 논설위원
wblee@kls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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