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근로계약,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성 인정 문제에 관심

IMF 경제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것은 올해 새롭게 부각된 노사관계 핵심화두라 할 수 있다.

통계청 7월 고용동향에서 전체 노동자의 53%까지로 그 비중이 늘어난 비정규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거의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 차별적 대우와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증가가 정규직을 대체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이를 규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해 왔다.

상반기 임단협 과정에서 병원, 호텔 등 비정규직이 많은 사업장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에 노사합의를 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반영해주는 대목이다.

이제 문제는 비정규 고용이 남용되지 않도록 어떻게 법제도를 정비할 것이냐와 비정규직의 노동자성을 어디까지 제도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비정규직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골자로 하는 하반기 법개정을 둘러싼 논의로 압축되고 있다.

* 노동계, "고용사유와 기간 명시"...경영계, "유기계약기간 확대"

노사정위는 경제사회소위원회(위원장 배손근)내에서 넉달 가까이 비정규직 대책방안을 논의해왔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상무위원회로 넘겼다.

그간 논의돼 왔던 제도개선관련 주요 쟁점은 기본입장,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시간, 유기계약근로, 파견근로, 특수고용형태 근로자, 사회안전망 확충 등 6개 항목.(표 참조)

우선 노동계의 핵심요구사항은 유기계약근로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23조가 '계약기간'에 대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제외하고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7월현재 임시직의 비중이 34.5%(4백62만1천명)를 기록해 비정규직 내에서도 숫자가 가장 많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는 단초가 되는 이 조항을 개정해 사용자가 남용하지 않도록 규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9월중으로 '출산, 질병 등으로 발생한 결원대체, 계절적 사업, 구체적 사유를 밝힌 임시적·일시적 고용에 한정해 노동위의 승인을 얻은 뒤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동일직무에 다른 노동자를 계속 임시사용하는 경우 일정기간 경과후에만 유기고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안' 등의 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세가지 사유가 있더라도 해당 사업장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거나, 기한은 1년을 넘길 수 없고 그 이후에는 정규고용해야 한다는 등으로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영계는 "기업의 채용관리에 있어 자율성을 저해하고 부담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고용 유연화를 위해 1년을 초과하지 못하는 유기근로계약기간을 3년으로 확대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도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학습지교사, 골프캐디,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형태 근로자의 근로자성 인정문제 역시 논란을 빚고 있는 사항이다. 유기계약근로 관련 법개정이 비정규직 자체를 규제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면 이는 기존의 근로자 개념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새로운 고용형태가 속속 생겨남에 따라 불거진 문제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골프장 캐디나 학습지 방문교사의 노조결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으나 근기법상 노동자성 인정여부는 판례와 행정해석이 엇갈리고 있다"며 "초과근로수당, 휴가, 모성보호 등 최소한의 근기법규정조차 인정되고 있지 않아 이들을 위해 노동자성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립사업자 형태를 취하고 있어도 특정사용자 계산으로 또는 특정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돼 업무를 수행하고 대가를 얻는 경우를 근로기준법 14조(근로자의 정의)에 포함시키자는 것이 공대위측 주장. 그러나 이 역시 경영계는 기업관리의 부담가중, 행정관리감독의 실효성문제 등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많다며 반대, 역시 합의에 이르진 못하고 있다.

* "비정규직보호 제도개선은 대세"

사실 노동자내에서도 취약계층으로 떠오른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노사 모두 인정하고 있다. 경영계 역시 "정규직에 비해 근로조건이 취약한 문제를 안고 있어 보호방안은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방안 자체를 모색하는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경영계는 노동시장 유연화선상에서 보호방안을 찾아한다며 노동계가 요구하는 '규제조치'나 '법개정'은 받아들이지 않으려하고 있어 사실상 노사간 합의가 도출되긴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김정태 경총 조사부장은 "별도 보호입법보다는 점진적인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듯 노사가 팽팽한 속에 비정규직 관련 법개정 여부는 이제 정부차원의 의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정형근로자 대책'을 준비해왔으며,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거친 뒤 늦어도 다음주께 김호진 장관이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부처 내에서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데, 비정형 근로자의 근로조건보호강화와 사회보험적용확대 추진, 실태 조사 등을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개정과 관련해서는 필요시 강구하겠다는 것 정도가 공식입장인데, 내부적으로는 이미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비정형근로자 문제가 심각한만큼 포괄적인 근로기준법 개정시 함께 추진되어질 것"이라며 "법정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함께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편법, 탈법적 사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기근로계약 관련조항을 손질할 필요성은 정부도 느끼고 있다"고 전해, 노동계가 지적하는 핵심 요구와 크게 비껴가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특수고용형태 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보호입법 추진은 이미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바 있어 역시 주목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관계부처간 협의나 법개정 추진시 사용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어떻게 이를 추진해나갈지는 지켜볼 문제다. 실제 지난 7월 캐디 및 생활설계사 근기법의 연내적용을 노동부가 추진중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그 반향이 엄청났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 비정규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노사간 접점을 찾기 힘든 사안이지만 연내 법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경영계의의 요구가 수용된 파견근로, 정리해고 등이 도입된지 3년째를 맞으며 다양한 형태의 고용불안계층이 생겨나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재계도 책임있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 법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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